등록 : 2005.10.10 18:13
수정 : 2005.10.1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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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됐던 F-15K의 초도기가 7일 오후 웅장한 위용을 뽐내며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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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국방일보에 비사 밝혀
한국이 공군력 증강 사업으로 팬텀 전폭기를 도입하려 하던 1960년대에, 미국은 주한 미 대사와 유엔군 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을 동원해 단종될 다른 기종을 ‘강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량 전 공군 참모총장은 10일 <국방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1967년 청와대에 불려가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실은 말이야, 주한 미 대사와 유엔군 사령관이 찾아와서 F-102기를 구입하라고 강권하는 거야. 그래야 군사 원조도 더 해줄 수 있다고 말이야’라고 말했다”고 술회했다.
주한 미대사·유엔군 사령관 “팬텀기대신 F-102기 구입해야 원조 늘려준다”
당시 주한 미 대사는 윌리엄 포터(재임기간 66년9월∼69년9월)였으며, 주한미군 사령관과 미 8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던 유엔군 사령관은 찰스 본스틸 3세 대장(재임기간 67년6월∼71년10월)이었다. 미국은 최근 도입되기 시작한 F-15K 전투기를 선정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F-X)에서도 주한미군 사령관 등을 동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미쪽은 이에 대해 “정상적인 판촉 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장 전 참모총장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미국 대사와 유엔군 사령관은 한국 조종사들이 팬텀기가 까다로워서 조종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란 말이야”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장 전 총장은 이에 “한 달에 한 번밖에 비행을 안 하는 저도 미국에서 팬텀을 타고 왔다”며 “팬텀은 조종사들이 타기에 제일 좋은 전투기”라고 박 전 대통령에게 답변했다고 말했다.
장 전 총장은 “미 태평양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이 나에게도 찾아와 F-102기를 구매하라고 요청했지만 단종될 기종을 살 필요가 없어서 거절했다”며 “이미 생산된 것들을 모두 팔아먹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내가 미국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록히드쪽이 주한미국 대사 등을 동원해 박 대통령을 움직여 보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록히드가 단종될 재고기종 팔아치우려 로비”
장 전 총장은 “이들의 로비는 이처럼 집요하고 용의주도했다”며 “1967년 10월 사이러스 밴스 미 국무장관과 최규하 외무장관의 회담에서 ‘팬텀기 지원을 보장받지 못하면 회담을 깨고 나오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 전 총장은 팬텀기 성능과 관련해 “나는 최신예기인 팬텀기(F-4)를 꼭 도입할 생각이었다. 당시 미 공군의 주력인 팬텀은 말 그대로 공중의 천하무적이었다. 속도·항속거리·무기 탑재량 등에서 다른 기종의 추종을 불허했다. 팬텀기는 2인승으로 음속의 2.4배이며, 항속 거리는 한반도에서 만주∼몽골, 일본의 규슈 남쪽, 중국의 베이징까지 커버할 수 있으며 무기 탑재력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B-17 폭격기와 비견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반면 미쪽이 추천한 F-102는 음속을 겨우 돌파했지만, 음속 돌파를 위해 기체를 바꾸면서 원래 계획했던 레이더 등을 탑재시키지 못한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
<한겨레> 정치부 김성걸 기자 s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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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자 국방일보 장지량 전 총장 ‘기고’ 전문
내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급히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지시가 왔다. 대통령은 미국 출장을 잘 다녀왔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장총장, 전투기 구입은 F-102가 좋다는데?”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어떻게 직접 F-102 기종을 들고 나오는가. 내가 의아해하자 대통령이 말했다.
“실은 말이야, 주한 미 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이 찾아와서 F-102기를 구입하라고 강권하는 거야. 그래야 군사 원조도 더 해 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곤란한 공군 현대화 계획이었다. 록히드사 제품인 F-102기는 독일·일본이 구입해 쓰고 있으나 휘발유 소비량이 많고 엔진 고장이 잦고 가격도 비싸 단종되는 비행기였다. 반면에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팬텀기는 미국·영국·이스라엘만이 쓰는 우수한 기종이면서 값도 쌌다. 이 때문에 이란이 1개 대대(18대)를 주문해 놓았고 이집트·인도·인도네시아·터키가 도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미국 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은 한국 조종사들이 팬텀기가 까다로워서 조종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란 말이야.” 대통령이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각하, 이번에 제가 팬텀기를 직접 타 보고 왔습니다. 참모총장은 한 달에 한 번밖에 유지비행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저도 타고 왔는데 매일 타는 조종사들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조종사들이 타기에 제일 좋은 전투기입니다.”
“그래?” 대통령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은 저한테도 미 태평양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이 찾아와서 F-102기를 구매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비행기를 몇 대 더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단종되는 기종을 살 필요가 없어 거절한 것입니다.”
“그래, 단종?”
이미 생산된 것들을 모두 팔아먹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내가 미국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록히드사 측이 대사 등을 동원해 박대통령을 움직여 보려고 한 것이었다. 이들의 로비는 이처럼 집요하고 용의주도했다.
“알았어.”
1967년 10월 사이러스 밴스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베트남 전쟁 추가 파병(1개 사단 병력) 요청을 위해 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박대통령을 예방한 것이다. 파병 협상 조건은 한국이 원하는 군사 원조를 충족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우리 정부는 국군 현대화 작업에 필요한 3억 달러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밴스 장관은 1억 달러 이상 응해 줄 수 없다고 해 줄다리기가 진행 중이었다.
박대통령은 우리 측 협상 대표인 최규하 외무부장관을 불러 “팬텀기 지원을 보장받지 못하면 회담을 깨고 나오라”고 지시했다. 물론 내 건의를 100% 수용한 결과였다. 대통령은 팬텀기를 지원받지 못하면 독자적으로 100대를 사겠다고까지 나를 청와대로 불러 언명했다.
결국 군사 원조는 1억 달러로 낙착됐고 이 돈에 대한 용처는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다고 했다. 며칠 후 국방부장관 주재 하에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군무회의가 국방부에서 열렸다. 국방부장관이 대통령 친서라며 대학생 노트를 찢어서 보낸 메모지를 펴 보였다.
“다들 들으시오. 최규하 - 밴스 장관의 회담 내용인데 군사 원조 지원액 1억 달러 중 팬텀기 1개 대대(18대) 구입비와 비행장 개선비(500만 달러)를 포함해 6800만 달러를 공군이 쓰고 나머지 3200만 달러는 육군·해군, 해병대와 경찰이 쓰라는 지시요.”
순간 다른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모아졌다. 썩 좋은 인상들이 아니었다. 각군은 서로 군사 원조 예산을 더 가져가려고 경쟁이 붙었는데 공군이 독식하다시피 하니 불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전의 개념상 공군 현대화 작업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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