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규모는 작은 수준이지만
남북협력사업의 상징적 가치 중요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 줄이기 기여
개성공단은 끝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 다시 문을 열고 ‘남북경협과 평화의 보루’라는 자신의 소임을 재개할 수 있을까?
현재 남북한이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재개 문제를 상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체제붕괴까지 언급한 상태다.
하지만 남북이 언제까지나 강대강의 대립을 이어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기에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경제가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개성공단 문제도 언젠가는 다시 남북의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때가 언제쯤일까? 그리고 그 협상은 공단 재개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개성공단의 재개와 관련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펴보자.
■ 남한 경제, 개성공단 없이 순항할까 개성공단의 규모는 남한 경제 규모에서 볼 때 매우 작은 수준이다. 하지만 분단과 대립의 남북관계에서 지속적인 남북협력사업으로서 개성공단이 지닌 상징적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지난 16일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한반도평화포럼, 국회 한반도 경제·문화포럼이 함께 주최한 긴급토론회 ‘개성공단의 운명과 한반도 평화’에서 서훈 전 국정원 차장도 “개성공단이 그동안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를 줄여왔다”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서 전 차장은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해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발표를 거론하며 “한반도에서는 평화 없이는 경제발전도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디스는 지난 13일 ‘개성공단 폐쇄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켜 한국의 국가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 전 차장은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 북한의 도발 지수보다도 북한 도발에 대한 남쪽의 대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더 중요시한다”며 이번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가 노태우 정부 이후 25년 동안 이어져온 포용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서 전 차장은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세계 조류를 빠르게 파악해 북방정책을 입안하고, 중국·러시아와 수교를 이루어냈다”며 “이것이 오늘날의 한국 경제를 있게 했고, 안보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도 “북의 핵시험이 여러 차례 진행돼도 떨어지지 않았던 국가신용등급이 남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 탓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이는 개성공단이 그만큼 평화지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회장은 개성공단 폐쇄가 경제에 끼치는 부담 때문에라도 “어떤 형태가 되든 개성공단이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도 “남북대치로 인한 경제위기 현상이 점점 명백해질수록 국민들의 개성공단 재개 목소리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 대북제재뒤 재개 점치지만박근혜 정부 임기내는 어려울듯
차기정권 지도자 결단없이 불가능
북한 당국의 수용의지도 충족돼야 ■ 박근혜 정부, 유엔 대북 제재 이후 움직일까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법무팀장을 맡았던 김광길 변호사는 멀지 않은 시기에 남북 정부가 움직일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김 변호사는 그 시점을 가깝게는 유엔의 대북제재 확정 이후로 본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단행한 목적 중 하나가 국제 제재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므로 유엔 제재가 확정돼 그 필요성이 해소되면 움직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북한에 미지급한 1천만달러 이상의 임금과 토지사용료가 남북 협상의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김 변호사는 북한의 경우도 개성공단 설비를 ‘몰수’하지 않고 ‘동결’했다는 점에서 대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한다. 김 변호사는 북한이 개성공단 노동력을 중국 쪽으로 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중국에 파견하는 인력은 대부분 미혼자인 데 반해, 개성공단 노동자는 대부분 기혼자”인데다 “남한 기업이 쓰는 기계와 중국 기계가 달라 그동안 익힌 숙련기술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단기엔 어렵더라도 2017년 대선 이후 가능성 있나 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은 개성공단 재개를 주제로 한 남북대화가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너무도 많이 나간 상태”라며 “명분이 없는 한 쉽게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 가능성 언급’이 문제라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임동원 전 외교·안보수석은 현 정권 임기 내에는 개성공단은 물론 여타의 남북관계 관련 대화도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박근혜 정부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대북포용정책을 표방하는 후보가 2017년 대선에 당선되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재개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의 개성공단도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표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개성공단 재개는 남쪽 집권자의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망했다. 개성공단 재개 논의는 ‘정권 교체’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개성공단 재개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하지만 포용정책을 표방한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개성공단 재개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성공단에 재입주할 기업의 존재,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갈 메신저, 그리고 최종적으로 북한 당국의 수용 의지가 모두 충족돼야 개성공단 재개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희 명예교수는 “남북 당국이 설사 개성공단 재개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확실한 보장책이 없는 한 누가 개성에 들어가려 하겠는가”고 반문한다. 이 명예교수는 “다시 기업들을 움직이려면 법·제도적인 보장책을 마련하는 등 보다 철저한 지원체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최대한 살려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이 재개될 때 다시 개성공단에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들이 현재의 124개 입주업체들이기 때문이다. 유 부회장은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을 살려내려면 일자리를 잃은 개성공단 주재원들의 생계 대책과 입주기업들에 오더를 주어온 거래처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유 부회장은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남북관계 복원의 메신저도 중요한 요소다. 사실 현재 개성공단 합의를 북쪽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은 남한 당국이 아니었다. 당시 남북 당국은 대화 단절 상태였다. 이때 민간기업인 현대가 1998년부터 소떼방북(6월), 금강산관광(11월)을 진행하며 북쪽과 신뢰를 쌓은 끝에 2000년 8월 마침내 개성공단 설치에 합의할 수 있었다. 포용정책을 표방한 대선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현재와 같이 남북간 신뢰가 바닥난 상황에서는 이런 메신저 노릇을 할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북사업을 하면서 현대가 큰 피해를 본 것을 지켜본 재벌그룹들이 과연 움직이려 할지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대북지원단체 대표는 “인도적 대북지원단체가 그동안 경색국면에서 남북관계를 푸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며 “대북지원단체들이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서도 필요하다면 메신저 구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다시 개성의 문을 여는 데 동의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개성공단 폐쇄에 맞춰 북한도 내부적으로 자구책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것이 2~3년 지나면 새로운 형태로 구조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노동력의 경우에도 언제일지 모를 공단 재개만을 기다리며 일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 굳어진 구조를 깨고 개성 주민들을 다시 공단 노동력으로 활용하려면, 북에 지금보다 더 큰 대가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개성공단 임금 핵개발 전용설’에 대해 남쪽 정부가 해명하는 것이다. 만일 ‘개성공단 임금 핵개발 전용설’에 대한 해명 없이 공단을 가동하려 하면 세계 각국이 따가운 비판의 시선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성공단 재개에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박근혜 정부가 남한 내부정치적 고려에 너무 치우친 결정을 내린 탓에, 남북한은 개성공단이 재개되든 재개되지 않든 큰 짐을 지게 된 셈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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