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1 19:16
수정 : 2005.10.21 19:16
구체내용 없어 구속력 논란, 맘 안맞으면 없던일 될수도
지난 20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의 담화문 발표를 계기로, 현대아산과 북쪽이 2000년 8월 맺은 ‘7대 협력사업 합의서’ 문제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북쪽 아태평화위의 언급대로 합의서가 전면 재검토된다면, 그동안 남북 경협을 주도해온 현대아산의 ‘아성’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7대 협력사업에 대해 현대아산에 독점권을 줬다는 합의서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 체결 당시에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이외에 북한 내 전력, 통신, 철도, 비행장, 댐건설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 시설 대부분을 30년간 독점하도록 한 내용에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방대한 합의서는 전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현대 쪽이 합의서 전모를 공개하지 않은 채 독점권을 주장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합의서를 본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의 문건에 대해 “합의서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제목에 합의서라고 써 있는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도 “현대아산이 개성공단과 개성관광, 금강산 관광을 진행하도록 승인한 것은 (2000년 8월 합의서 때문이 아니라) 별도의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초기부터 견지해온 입장이기도 하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한 경협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합의서라면 곧바로 사업에 착수할 만한 구속력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며 “7대 협력사업 합의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남쪽 기업이 북쪽과 합의서를 체결할 때는 일반적으로 △근거 법률 △업종 및 원·부자재 조달방식 △판매 방식 △사업 착수 시기 △투자금액 △공장 위치 및 면적 △이윤의 분배 △직원 출입 방식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내용을 문서로 적시한다. 금강산 관광도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작됐는데, 7대 합의서는 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이런 점을 들어, “상식적으로 봤을 때 7대 사업 합의서는 사업의 제목과 큰 테두리만을 정한 일종의 ‘의향서’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수준의 합의서로는 협상이 잘 안되면 “서로 털자”며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그동안 현대 쪽의 독점권 주장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던 북쪽이 “‘7대 협력사업 합의서’라는 것도 합당한 법적 절차와 쌍방 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수정보충하거나 다시 협의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며 공개적으로 이를 거론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남쪽 기업과 북쪽의 계약 체결 때 상투적으로 들어가는 이런 표현을 북쪽이 쓴 것은, 현대와의 사업 재조정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다른 쪽으로 사업 파트너를 찾아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도 “현대가 (7대 사업을 할) 여력이 없다는 점은 북쪽도 알고 있다”며 이런 견해에 동의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현대 이외에 (7대 사업 등에) 참가할 다른 기업이 없다”며 “일단 금강산관광 사업 정상화 뒤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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