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21 19:35
수정 : 2016.04.21 19:35
1950년 장진호전투 임병근 일병 주검 2만1천Km 돌아 유가족 품에
스무살 홍안으로 집을 떠났던 청년은 태평양 건너 2만1천㎞를 돌아 66년 만에 백골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전쟁 때 북한 땅에서 전사한 임병근(1930년 5월5일생) 일병의 사연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1일 전사자 신원 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주검 수습 때 관을 덮었던 태극기 등을 부산에 사는 장조카 임현식(71·맨 왼쪽)씨에게 전달했다. 임 일병은 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8월 미7사단 소속 카투사로 입대해 함경남도 장진호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장진호전투는 50년 겨울 혹한의 날씨에 미군이 북한의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점령하려고 진격하다 오히려 장진호 근처에서 중국군에 포위돼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한 싸움이다.
장진호 근처 들녘에 묻혀 있던 임 일병의 주검은 미군의 끈질긴 유해 발굴 작업 덕분에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미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현 DPAA)는 북·미 합의에 따라 2000년부터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하다가 이듬해 임 일병 등 아시아계 12명의 주검을 찾아냈다. 국방부는 “만약 북한이 한국군 주검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미군만 반출한다는 합의 조항 때문에 귀환이 불가능할 뻔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하와이로 가서 공동 감식한 결과, 아시아계로 분류해놓은 12명 모두 국군 전사자로 최종 확인됐다. 2012년 5월 국내 봉환된 12명 가운데 김용수·이갑수 일병의 신원만 확인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감식단은 이후 장진호전투 전사자 유가족을 지속적으로 추적한 지 4년 만에 10명 가운데 임 일병의 가족을 찾은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먼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유가족을 찾아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고, 임 일병을 기억하는 장조카도 만나 친·외가 6명의 유전자를 대조 분석했다”고 말했다.
장조카 임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주실 정도로 자상했고 손재주가 많은 삼촌이었다. 어느 날 삼촌이 보이지 않아 여쭤봤더니 사형제(4남1녀 중 넷째)의 대표로 자원입대한 뒤로 소식이 끊어졌다고 들었다”며 “아버지의 신신당부에 따라 해마다 9월9일 제사를 지내왔다. 정확한 전사일을 알 수 없어 ‘영혼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을 잡았다. 올해부터는 삼촌이 돌아가신 12월6일에 제사를 지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외조카 권순영(79)씨는 “외가댁과 집이 가까워 자주 놀러 가곤 했다. 외삼촌은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여서 함께한 기억이 많다. 노래도 잘하고 영어도 잘했다. 백골로나마 다시 외삼촌을 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임 일병의 주검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오는 6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남은 9명의 주검은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국방부 유해보관소에 안치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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