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1 19:16
수정 : 2016.05.11 21:29
정보당국 역대 ‘오보’ 사례
대통령이 ‘붕괴’ 말하면 그에 맞춰
대표적인 정보실패 ‘김일성 사망’
‘서울 수몰’ 저수량 6배 부풀리기도
한국 정부가 ‘죽었다’고 발표한 북한 사람이 살아 돌아온 사례가 리영길 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처음은 아니다.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6년 ‘김일성 사망’ 오보 사태다. 1986년 11월17일 이흥식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를 통해 김일성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방송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그날 석간신문 1면은 “김일성 총격으로 사망”(<동아일보>), “김일성 피살”(<경향신문>)로 도배됐다.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 없던 조간신문은 호외(한 장짜리 특보)를 찍어 뿌렸다. ‘김일성 사망설’을 하루 앞서 11월16일치에 보도한 <조선일보>는 11월18일치 12개 면 가운데 7개 면을 ‘특종기’를 포함해 김일성 사망 기사로 채웠다.
그런데 11월18일 <유피아이>(UPI) 통신이 베이징발로 김일성 주석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몽골의 국가원수인 잠빈 바트뭉흐 총서기를 영접했다고 타전했다. 석간신문은 하루 전 보도를 180도 뒤집어 “김일성 평양공항에 나타나”(<동아>), “김일성 살아있다”(<경향>)는 1면 머리기사를 실었다.
‘정보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정보’엔 가치가 개입된다. 정보는 당파적이다.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은 ‘최상위 정보 사용자’인 최고권력자의 정책 기조와 취향에 ‘정보’를 맞춘다. 최고권력자가 북한의 붕괴를 확신하면 그 믿음을 떠받칠 ‘정보’가 양산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했을 때, 안전기획부는 북한 붕괴의 ‘증거’를 쏟아냈다. 당시 고위관료들은 “빠르면 사흘, 길어도 3년”이라고 북한 붕괴를 예언했다.
최고권력자의 의중에 맞춘 ‘정보 조작’도 적지 않다. ‘김일성 사망’ 오보 사태 한달 전인 1986년 10월 전두환 정부는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고 북한이 짓고 있는 금강산댐을 무너뜨리면 서울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애초 이 댐이 농업·공업·생활용수 공급과 수력발전을 위한 댐이라 판단했지만, 전두환 정권의 2인자인 장세동 안기부장이 북한의 ‘수공 위험’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다. 안기부는 미국 공병 수로국이 37억t으로 추산한 이 댐의 저수량을 ‘최대 200억t’으로 부풀렸다. 이런 사실은 1993년 감사원 감사로 밝혀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이라크 침공 빌미를 찾는 데 혈안이 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도 ‘정보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미 국방정보국(DIA)이 ‘커브볼’이라는 암호명을 붙인 이라크 반정부 인사의 ‘후세인 정권이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다량 갖고 있다’는 주장을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라크 공격의 명분으로 제시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어떤 대량파괴무기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