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7 21:11
수정 : 2016.10.17 22:11
2007년 11월15~20일 실제 무슨 일이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기권’ 결정 과정을 담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의 내용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기억을 보면, 일부 ‘사실’은 겹치고, 일부는 ‘해석’이 엇갈린다.
11월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
합의 이뤄지지 않아
다수·소수의견 올려
11월16일 대통령주재 비공식회의
노 대통령 “기권으로 갑시다”
북한에 물어봤나 통보했나
송민순 “북에 확인해보자 결론”
김경수 “기권 결정 전달하기로 해”
11월20일 안보실장이 건네준 쪽지
송민순 “북으로부터 받은 반응”
백종천 “국정원 통상 정보보고”
노 대통령 발언 해석
노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참모들 “송 위로하는 차원의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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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7일 오전 자신이 총장으로 재직중인 북한대원대학교(서울 종로구 삼청동)로 출근하던 중 회고록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는 “나는 정치적인 의도로 쓴 게 아니다”라면서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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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공식 회의, 11월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 공식 회의록이 존재하는 유일한 회의다. 안보실장 주재로 청와대 서별관에서 진행됐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도 참석했다. ‘기권’이 다수 의견이었는데 주무장관인 외교장관(송민순)이 ‘찬성’을 고수했다. 회고록엔 “회의는 파행됐다”고 돼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권’을 다수 의견으로 적고, 송 전 장관의 ‘찬성’ 의견을 소수 의견으로 부기해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말했다. 안보정책조정회의는 논의 결과를 대통령한테 보고할 뿐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대통령은 안보정책조정회의 논의 결과를 추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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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은 ‘기권’ 쪽에 11월16일, 대통령 주재로 점심식사 시간 직후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비공식 회의가 이뤄졌다. 통일·외교장관, 안보실장,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회고록 내용과 달리 국가정보원장은 없었다. 통일장관(이재정)과 외교장관이 격론을 벌였다. 회의 뒤 노 대통령이 드러낸 의중이 ‘기권’ 쪽이었음은 양쪽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 밝힌 대로 북한인권결의안 찬성을 위한 “마지막 호소문”을 쓴 이유다. 다만 송 전 장관은 “격론했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고 회고한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기권 결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서 회의에 배석했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 ‘송 장관 말이 맞지만 이번엔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는 것이다. 다만 이 회의 뒤 결의안과 관련한 공식 회의가 다시 소집되지 않은 사실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날 회의에서 방침이 결정됐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 회의는 비공식 회의라 공식 회의록은 없다. 메모 형식의 기록이 남아 있을 개연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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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회의의 성격 11월18일 청와대 서별관에서 다시 열린 회의가 공식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 비공식 회의라는 점은 양쪽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송 전 장관은 ‘결의안 표결 방침을 재론하는 자리’로 회고했다. 다른 참석자들은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회고록(451쪽) 내용처럼, ‘재논의’ 회의로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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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결정 전 물었나, 결정 뒤 통보했나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11월18일 논란이 계속되자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적었다. 이재정 당시 통일장관은 “이미 결론을 냈는데 북한 입장을 왜 물어보겠느냐”고 반박한다. 김경수 의원은 “(11월18일) 회의의 ‘기권 결정’을, 10·4 정상회담 직후 다양한 남북대화가 이뤄지던 시점에 북한에 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뭔가 ‘말’을 하기로 한 건 양쪽 모두 인정하는 ‘사실’인 셈이다. 다만 그게 ‘결정 전 의사 타진’인지, ‘결정 뒤 통보(+반응 확인)’인지는 해석이 엇갈린다. 공식 회의록이 없어 전말을 확인하기 어렵다. 김 의원은 “이날 회의도 당연히 안보실장이 주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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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0일 ‘쪽지’와 노 대통령의 발언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11월20일 대통령 숙소에서 “백종천 안보실장이 쪽지를 들고 있”었고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당사자인 백종천 당시 실장은 “국정원에서 온 통상적인 정보보고”라고 했다. ‘사실’에서 엇갈린다. 송 전 장관은 당시 노 대통령이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했다고 적었다. 결정 전에 북한에 물었다는 ‘증거’로 제시된 대통령의 발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참모들은 “참모의 기가 꺾이지 않도록 배려하는 노 대통령 특유의 화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백종천 당시 실장도 “대통령이 (참모들을) 인간적으로 대한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송 장관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한 말씀”이라고 회고했다. ‘해석’도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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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변인의 “20일 기권 방침 결정” 브리핑 천호선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11월21일 “20일 저녁 늦게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백종천 안보실장이 대북결의안에 대해 보고해 노 대통령이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과 맥락이 통한다. 하지만 참여정부 고위 관계자는 “어느 정부도 정책 결정 내용을 늘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 방침을 밝히는 데 시차를 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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