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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4 18:10 수정 : 2017.01.05 01:22

2016 통일인문학세계포럼-아픔의 연대와 공통의 역사

2016년 한 해 동안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제 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2016년 12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희생자를 위해 헌화를 하고 있다. 북한의 위안부 피해자도 2009년 현재 219명의 여성이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있으며 그중 46명이 공개증언에 응했지만 현재 공개증언자 중 생존자는 10명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위안부 할머니들이 더 많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북이 위안부 문제에서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7년에는 남북의 위안부 문제 연대가 필요하다.”

지난 12월17일 일본 교토 리쓰메이칸대학에서 진행된 ‘2016 통일인문학세계포럼-아픔의 연대와 공통의 역사’에서 한·중·일 학자들이 강조한 얘기다. 지난해 3회째를 맞은 통일인문학세계포럼은 한국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일본의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중국의 연변대학 민족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2014년 첫 통일인문학세계포럼 때부터 공동주최자로 참여해왔던 ‘북과 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해외대학’인 도쿄의 조선대학교는 이번에는 공동주최자로 참여하지 못했다. 2016년 단절된 남북관계 영향 탓이다. 대신 조선대학교는 리쓰메이칸대학의 초청으로 공식 행사 이전의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간접적인 남북 학술교류’라는 통일인문학세계포럼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올해도 이어질 수 있었다.

6·15선언 이후 헤이그에서
남북 피해 할머니들 공동증언 했지만
2008년 이후 남북관계 냉각기
남북 협력 큰 진전 이루지 못해
박근혜 정부 12·28합의
“피해자 치유 정신 소홀” 비판
남북 넘어 피해국들 연대 목소리도

‘동아시아인의 기억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주제로 진행된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통일인문학세계포럼이 지향하는 ‘소통·치유·통합의 인문학적 문제의식’으로 동북아시아의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인 ‘일본군 종군 위안부 문제’를 살펴봤다.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깊은 상처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각국의 피해자 연대가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남북한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2015년 말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사이에서 이루어진 ‘12·28 합의’가 피해자 연대에 소홀한 합의였음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한 강성은 조선대학교 교수(조선문제연구센터장)은 ‘배봉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라는 발표를 통해 ‘남북한의 단절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크게 약화시켜왔음’을 지적했다. 1914년 9월 충남 예산군 신례원리에서 태어난 배봉기 할머니는 2차대전 말인 1944년 11월부터 1945년 3월 무렵까지 오키나와의 작은 섬인 도카시키섬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해방 뒤 오키나와에 남게 된 배 할머니는 1975년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숨기고 싶은 진실’을 밝혔으나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북남 분단의 정치적 대립이 최초의 위안부 증언인 배 할머니의 증언을 묵살”한 탓이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 총련 활동가들이 배 할머니를 적극 지원한 것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 대결의식이 강한 당시 상황에서는, ‘일제 식민지 피해를 밝힐 중요한 증언’이라는 점보다는 ‘총련과 관련된 일이니 무시하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1970년대 배봉기 할머니의 아픈 증언을 무시하게 만들었던 남북의 적대관계는 그 뒤 얼마만큼 변해온 것일까.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같은 해 12월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 나란히 나서 일본의 만행을 함께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다시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남북의 협력도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 따로따로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인 남북의 대응이 제각각인 상황에서는 가해자인 일본의 책임 회피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북도 위안부 피해가 큰 지역이기에 위안부 할머니가 많이 존재한다. 김철수 조선대학교 교수(조선문제연구센터 부속 재일조선인관계 자료실장)는 “조선에서는 1992년 5월21일 ‘일제의 조선강점피해조사위원회’를 발족한 뒤 일본군 성노예 범죄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93년 8월 ‘일제가 감행한 ‘종군위안부’ 범죄사건에 대한 중간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09년 말 현재 219명의 녀성이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있으며 그중 46명이 공개증언에 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령으로 사망함에 따라 현재 “생존자는 10명 미만”인 상황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최근 북-일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조선의 피해 사례가 잘 알려지지 않고 관련 논문도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북이 연대해 활동하면 남한이 이런 일본의 피해 사실을 전달하는 ‘통로’가 됨으로써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이끌어낼 좀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지만, 남북관계마저 최악인 상황에서 이런 노력마저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부와 개별적으로 ‘12·28 합의’를 한 데 대해 참가자들은 경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허명철 중국 연변대학 민족학연구소장은 “위안부 피해 문제는 결코 한-일 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은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국제 연대 결의안 등이 나올 때 홀로 계속 기권하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국이 남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일본 제국이 점령했던 15개 나라에 이르는 상황에서 ‘피해자 연대’에 좀더 노력하지 않고 덜컥 합의한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스스로 죽이는 큰 실책이라는 것이다.

안자코 유카 리쓰메이칸대학 문학부 교수도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관심이 큰 사안이기에 일본 우익의 공격도 집중되고 있는 문제”라며 “피해자가 완전히 부재한 ‘12·28 합의’가 차기 정부에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12·28 합의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피해자 치유’ 정신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소통·치유·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연대를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허명철 소장은 “위안부 문제는 개인의 아픔일 뿐 아니라 피해를 당한 민족들의 아픔”이라고 전제하고 적극적인 피해국간 연대를 제안했다.

그중 핵심은 역시 남북한의 연대다. 강성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014년 6월3일 도쿄 조선대학교를 방문해 한 강연을 주요한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같은 해 5월31일 도쿄에서 열린 ‘제12차 일본군 ‘위안부’ 아시아 연대회의’에 참석한 뒤 조선대학교 강연에 나섰다. 당시 김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우리와 같은 피해자를 내지 않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한 여학생이 “할머니의 의사를 이어 ‘동지’로서 싸워 언젠가 선대의 한을 풀 수 있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히는 등 학생들이 “할머니를 위로해드리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힘을 얻었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남북한 연대는 이렇게 피해자를 서로 위로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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