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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7 20:45 수정 : 2005.11.08 07:14

제5차 6자 회담에 참가하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운데) 등 정부 대표단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회담이 열리는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9일 개막

5차 6자회담은 짧게 시작해서 길게 갈 것으로 보인다.

9일 베이징에서 시작하는 이번 회담은 이전과 달리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18∼19일 부산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외교일정 때문이다. 이르면 주말, 늦어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이뤄지는 15일 이전엔 회담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한국의 회담 관계자들이 이번 회담을 ‘5차 1단계 회의’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1단계는 탐색전이고, 아펙 정상회의 이후 연내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2단계 회의부터 ‘인내와 관용이 필요한 긴 협상’이 될 것이다.

아펙 정상회의 코앞…길어야 일주일
북-미, 정치적 의지 사전확인 못해
한국 ‘9·19 공동성명’ 바탕 로드맵 제안

짧은 탐색전= 6자회담 한국쪽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이번 회담은 서로의 생각을 밝히고, 그 생각의 배경과 탄력성을 탐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차관보는 “9·19 공동성명 이행계획의 방향과 전체적 윤곽에 대해선 각국의 생각에 상당한 유사함이 있다”며 “(다만)이를 세부조처로 연결하는 데 조율이 필요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회담 전망은 불투명하다. 4차 회담 합의에서 ‘적절한 시기의 경수로 제공 논의’가 포함된 데 대한 미국내 반발이라는 후폭풍 탓도 있다. 미국은 4차 회담 이후 북한을 자극·압박하는 조처를 여럿 취했다. 지난달 12일 션 갈렌드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 등 6명을 북한과 공모해 위조 달러를 대량 유포시킨 혐의로 미국 법원에 정식 기소하고, 이어 10월21일 미 재무부가 북한의 8개 기업에 대해 미국 내 자산동결 조처를 취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내 강·온파간 6자회담 전략 조율이 원활치 않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4차 회담 이후 50여일 동안 이견의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수석대표간 사전 양자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중국쪽 차석대표로 북한·미국과 두루 양자협의를 한 리빈 한반도담당대사는 지난달 28일 한국에 와서 “(북-미가) 문제를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다”며 “각자의 관심사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미 뉴욕채널이 가동되긴 했지만 들고 나올 보따리의 차이보다 그 이면에 있는 정치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게 더 문제다.

회담의 출발점= 물론 이번 회담은 확실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 9·19 공동성명이다. 중심적 역할을 자임하고 강조해 온 한국은 이 공동성명에 근거해서 해석하고 판단하겠다는 자세다. 합의 이행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 차관보는 “이행의 원칙은 상호성과 동시성”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선 핵폐기’에 알레르기적인 거부반응을 보여왔다. 미국도 이를 알고 있다. 미국쪽 차석대표인 조지프 디트라니 국무부 대북협상대사는 2일 “누구도 북한에 일방적으로 (먼저)행동하라고 요구하진 않는다”며 “우리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송 차관보의 비유처럼 북·미 역시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계열의 로드맵= 이제 목적지를 가기 위해 손발을 맞추는 일이 남아 있다. 한국쪽은 출발점과 종착점이 명확하게 규정되고 그 안에 ‘상호조율된 조처’가 시계열로 배치된 로드맵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쪽이 취할 조처로 핵시설의 신고, 동결, 폐기 검증 등 핵 폐기의 절차와 이를 보완하고 완결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복귀를 시간적 선후로 명시해 배열하고, 이에 대응해 한국 등 다른 5자가 취할 손실보상 차원의 상응조처로 대북에너지(중유) 지원과 200만KW 송전, 경수로 제공 등을 조응시키면서 동시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등 미국과 일본의 관계개선 조처들을 병행해 가는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핵폐기와 사찰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북-미, 북-일 관계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등 주제별로 실무그룹회의를 구성해 접근해 가는 ‘멀티트랙 형태’는 이런 단일 로드맵을 보완하는 구조로 협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어디까지나 ‘탐색전’이다. 그런만큼 북-미 모두 상대방에 ‘신뢰의 담보’를 요구하며, 각자가 바라는 ‘최대치’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미간 신뢰조성의 징표’로 경수로 제공을 중시하는 북한쪽과, ‘모든 핵 포기’와 관련해 농축우라늄프로그램 등의 자진신고를 강조하는 미국 사이의 간극은 클 수밖에 없다. 5차 6자회담은 그 간극을 메우고, 접점과 연결고리를 찾는 일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이제훈 기자 kankan1@hani.co.kr


‘핵폐기-안전보장’ 닮은 꼴 ‘우크라이나 모델’

다자간 합의로 미국 부담 덜고 중·러 참여로 북 안보우려 없애

상황과 조건이 다르면 해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기준이나 참고가 될 수는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은 선 핵폐기의 ‘리비아 방식’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핵보유국이 된 ‘파키스탄 모델’로 가겠다고 위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도 있다. 핵보유에 크게 못미친 리비아와는 다르지만, 남아공은 핵보유국의 자진 핵폐기라는 선례를 남겼다. 또 현재 진행형으로서는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고수하며 안보리 회부-핵무기 개발의 힘겨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란 핵’이 있다.

지난 1996년 10월23일 중앙우크라이나 크멜니츠키 기지의 핵미사일 격납고가 폐쇄되기 직전, 미국과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들이 현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들 모두는 5차 6자회담 이후 북핵 해법의 모델들로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방식’을 핵 폐기와 그에 따른 상응조처를 담을 구체적인 이행계획의 전범으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은 지난 1994년 1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의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에 관한 안전보장각서’를 체결했다. 6개항으로 된 이 각서는 우크라이나의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과 핵무기 제거에 대해 △독립 및 주권·국경의 존중 △군사력 위협 및 사용 금지 △경제적 제재 금지 △핵무기 침략을 받을 경우 안보리의 즉각적인 대응행동 등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나머지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중국도 별도의 양해각서로 여기에 동참했다.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다자적 해법과 상호 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이미 6자회담은 우크라이나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외과)는 이 우크라이나 모델의 의미를 세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하나는 북한이 시종 요구해온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양자간 불가침 조약 체결’에 부담을 느껴 온 미국 쪽에 ‘다자간 합의 각서’란 새로운 대안적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장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적대 관계 해소, 주권의 상호 존중, 내정 불간섭, 그리고 핵 불사용 원칙 등 93년 북-미 1차 고위급회담에서의 공동성명, 94년 제네바 기본합의, 그리고 2000년 10월 조명록-올브라이트 공동성명 등을 통해 북한이 미국 쪽과 합의했던 사항들을 6자 회담 채널을 통해 재보장해 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었던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해소하는 데 공헌했듯이, 북한의 우호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가 6자회담 틀 안에서 합의의 당사자로 참여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북한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6자회담 차석대표인 조셉 디트라니 대북 협상대사는 지난 2일 한 세미나에서 핵폐기의 상응조처로서 북한에 대한 에너지·경제 지원과 핵과학자·기술자 재교육 등을 언급했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적용했던 넌-루거법안(옛소련의 핵무기 해체협력에 관한 협력적 위협감소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상호 조율된 조처’ 이끌어내려면 북-미
정치적 결단으로 ‘신뢰’ 보여야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해 단계적 방식으로 상기 합의의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처를 취할 것을 합의했다.”

지난 4차 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의 한 대목이다. 6자가 합의 이행의 구체적 방법으로 ‘상호 조율된 조처’를 제시한 것은, 북한이 요구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동시 행동 조처’라는 용어를 꺼리는 미국을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합의 이행의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다소 모호하고 어려운 개념인 ‘상호 조율’이 ‘동시 행동’보다 오히려 더 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북핵 해법의 구도는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라는 지붕을 북한의 ‘모든 핵 포기’와 5자의 ‘상응조처’라는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형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 그 내용과 성질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이를 냉전 시기 미-소의 군축 협상과 비교했다. 미-소 군축협상은 양쪽이 지닌 미사일·탱크·비행기 따위를 그 성능 등을 고려해 일련의 정형화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감축 숫자와 종류를 정하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핵 6자회담에선 이게 어렵다는 것이다. 상응조처라는 것이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이기에 더욱 그렇다.

북한의 핵폐기 선언과 등가가 될 수 있는 상응조처는 무엇인가? 북이 가동중인 핵시설을 동결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등가적인 조처는 무엇인가?

냉전 시기 군축협상도 ‘대칭성’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북핵 6자회담은 ‘비대칭성’을 상호 연계시킨 동시적인 조처로서 풀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를 푸는 열쇠는 ‘신뢰’이며, 정치적 결단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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