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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H-6) 6대를 포함해 전자정보수집기(Y-9J), 해상초계기(Y-8J) 등 중국군 군용기 10대가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해 동해안으로 비행했다. 당시 대만해협 인근에 중국의 랴오닝 항공모함이 배치돼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국지적 사태가 아니었다. 사진은 중국 전략폭격기 H-6K가 남중국해를 비행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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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미-중 신경전과 한반도
사드로 한-중 관계 최악 치달아
중국, 주석까지 나서 당부했는데도
한국, 별도 설명 없이 배치 결정
탄핵 와중서도 “입장 변함없다”
중, 관광·화장품 등 경제 보복 나서
한반도 겨냥 핵탑재 전폭기 훈련까지
대한해협 상공에 전투기 40대 엉켜
미-중 항공모함 대치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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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H-6) 6대를 포함해 전자정보수집기(Y-9J), 해상초계기(Y-8J) 등 중국군 군용기 10대가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해 동해안으로 비행했다. 당시 대만해협 인근에 중국의 랴오닝 항공모함이 배치돼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국지적 사태가 아니었다. 사진은 중국 전략폭격기 H-6K가 남중국해를 비행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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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민주당 송영길 의원 일행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50여분간 면담했다. 왕이 부장에 의하면 시진핑 중국 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핵심 이익을 고려하여 사드의 한국 배치는 신중히 재고해 달라”는 부탁을 세번이나 했다. 지난해 6월말에 베이징을 방문한 황교안 총리에게도 시진핑 주석은 똑같은 당부를 전하고 사드 배치에 대해서만큼은 한국 정부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황 총리가 귀국한 지 일주일 만인 7월7일에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이튿날 이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에는 어떤 사전 언질이나 설명도 없었다. 한국과의 관계 증진에 심혈을 기울여온 중국의 지도부로서는 사드 배치 결정 자체보다 중국을 무시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계속해서 왕이 부장은 한국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제·문화 제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며 사드로 인한 한-중 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며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송영길의 중국, 김관진의 미국
집권 초부터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미-중 간의 ‘균형 외교’를 표방해온 박근혜 정부는 정작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중국과의 관계 악화마저 불사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중국의 사드에 대한 반발을 두고서는 ‘주권 침해’라며 무시해버리고 더욱더 미국에 경도되어 사드 배치 강행을 다짐하고 있다. 9일 미국을 방문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클 플린을 만나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김 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하여 “사드는 자주권 문제라서 중국의 반대에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보좌관에 불과한 그가 외교·안보 정책의 당사자로 나선 것 자체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배경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공식적인 외교 통로를 벗어나 야당 의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함께 중국 정부를 길들이고자 하는 미국의 매파와 공조를 과시하는 정략적 의도라 할 것이다. 야당 의원들의 방중 직후 김관진 실장의 미국 방문이 급조된 이상 그의 중국에 대한 강경 발언은 예상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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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요격 미사일이 저격 시험을 위해 발사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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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이래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양국 관계는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국내에서 예기치 않은 또다른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분야는 중국발 경제 쇼크다. 올해 1월초에는 국방부와 롯데 간에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 위치한 롯데 소유의 골프장 부지와 경기도 남양주의 국유지를 맞교환하는 협약이 체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한국을 방문한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롯데 최고위층을 만나 사드 부지 제공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뒤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미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 기업으로 인식되면서 중국 현지에서 150개가 넘는 롯데 매장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규제가 시행되던 상황이었다. 중국 정부의 표적 기업이 된 터였다. 롯데 쪽으로서는 중국의 자사에 대한 표적 조사는 청천벽력이었다. 지난해 11월에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롯데는 한 채에 최고 300억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주거시설이라 할 수 있는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건설 투자설명회를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 중국의 부호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롯데는 그동안 중국에서의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는 회심의 기회를 노리던 터였다.
사드에 따른 경제 피해액 4조3000억원
그러나 중국 정부가 롯데를 표적화한다면 롯데의 중국 사업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1월초에 국방부와 토지 교환 협약이 안건으로 상정된 롯데 이사회는 무기한 연기됐고 자연히 국방부와의 토지 협약도 연기됐다. 다급해진 국방부는 연일 롯데 쪽과 긴급회동을 제안하고 있지만 정작 롯데는 대통령 탄핵 이후 사드 문제의 향방을 전망하며 몸을 사리는 중이다. 롯데 외에도 삼성과 에스케이 등 중국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만난 천하이 부국장은 사실상 사드 배치 뒤에 우리 기업에 대한 경제 제재가 착수된다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쪽은 단순히 국내 대기업에 대한 압박만이 아니라 홍대, 명동, 남대문과 같은 중국 방문객의 주요 방문지의 상권에 대해서도 이미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홍대상인회(회장 최차수)가 지난 11일 필자에게 밝힌 바로는 지난해 7월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관광객이 60~70% 감소했다. 개인 관광객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단체 관광객은 완전히 사라져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경제전문가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사드 이후 중국발 경제 손실은 4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중국 정부는 한국산 화장품의 통관을 불허하여 화장품 수출에 타격을 줬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만일 중국 정부가 개인 관광객에 대해 한국에서의 화장품 등 쇼핑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하게 되면 개인 관광객마저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홍대 앞 등 주요 상권은 공동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바로 이 시점이 중소 상공인들에게 사드로 인한 직접적 타격이 발생하는 분기점이다. 노점상을 비롯하여 숙박업과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사드 문제에 대해 가장 긴장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양상은 제주도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양상을 종합하면 중국은 본격적인 제재를 실행하기 이전에 약간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행정 조처로 한국에 끊임없이 경고의 신호를 발신하는 단계다. 12월에서 1월로 이어지는 기간에 중국은 한국에 사드 배치를 가속화할 경우 상당한 수준의 경제제재 조처가 불가피하다는 통첩을 전달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자기들 예산으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지만 우리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무기를 들여오는 셈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불안으로 치닫는 새해 초에 중국이 한·미·일 동맹에 대한 무력시위에 나선 건 한반도 지정학에 또 한번의 충격이었다. 중국의 북부 군구사령부가 한·미·일 군사동맹의 핵심을 위협하는 공세적 군사행동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북해함대 소속의 랴오닝 항공모함이 모항인 칭다오를 출발하여 동중국해에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12월15일께다. 이후 대만, 오키나와를 거쳐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던 랴오닝 항공모함은 이에 대응하여 미국이 1월초에 서태평양으로 급파한 칼빈슨 항모전단과의 조우가 예견됐다.
“미-중 간의 거대한 신경전 한반도서”
지난 9일에 동북아 지정학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과 캐나다를 순시하고 복귀 중이던 중국의 미사일 호위함 편대가 일본 북방 열도 사이에 있는 쓰가루 해협을 통과하여 동해로 진입한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중국 북부 군구사령부 소속의 전략폭격기(H-6) 6대를 포함하여 전자정보수집기(Y-9J), 해상초계기(Y-8J) 등 10대의 군용기가 이어도 남방에서 출몰한 장면이 경기 오산에 위치한 공군 작전통제소 전광판에 나타났다. 이 군용기들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더니 이후 대한해협의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을 통과하여 동해상으로 비행을 계속했다.
우리 군은 전투기(F-15K, KF-16) 10대, 일본은 전투기(F-15J, F-2, F-4) 26대를 발진하여 중국 군용기에 최단 거리로 접근하는 초계 비행을 시작했다. 초계 비행은 중국 항공기 조종사의 얼굴까지 육안으로 보이는 500미터 이내의 거리까지 접근하는 긴박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대한해협에서 3개국 군용기 40여대가 뒤엉키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졌다. 중국 군용기는 주로 일본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하면서 대한해협을 통해 북상하여 귀환하던 중국 미사일 호위함 편대를 동해에서 엄호하는 기동을 실시하고 곧바로 오던 항로를 되돌아갔다.
지난해에도 중국 함정을 호위하는 전략폭격기의 대한해협 비행은 한번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일 비행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가 6대나 동원된 점, 당시 대만해협 인근에 랴오닝 항공모함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국지적인 사태가 아니라는 점은 명확했다. 랴오닝 항모와 군용기가 모두 북부 군구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중국의 단일 지휘관이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작전의 판을 짠 공·해 합동작전임이 분명했다.
1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민주당의 김병기 의원은 “미국과 중국 간에 거대한 세력 게임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며 “한국의 사드 배치 문제가 그 게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국방부 역시 이날 간담회에서 “중국 군용기의 대한해협 진입이 사드 배치 문제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그 의도를 심층 분석 중”이라고 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중국의 군용기 비행을 사드 배치와 연결 짓는 데 대해 신중한 입장도 있지만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한·미·일에 맞서 힘을 과시하는 중국의 전략적 기동임이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 직후 중국은 전략폭격기가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서 상시적으로 훈련하겠다”며 “중국이 커진 만큼 훈련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 일본, 대만을 영향권에 두는 항공모함과 군용기 훈련은 무력시위 성격이 다분하다. 국방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는 이런 중국의 군사행동에 대해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다가 일본 언론이 9일에 군용기 출몰을 대서특필한 다음에야 마지못해 그 사실을 공개하며 중국에 대한 특별한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용기가 출몰한 무렵 우리 방공작전통제센터는 핫라인으로 연결된 중국 관제센터에 연락을 했지만 중국 쪽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몇 차례 거듭된 발신이 있고 나서야 중국 관제센터는 마지못해 전화만 받고 형식적인 응대만 했다.
부임 4년 되도록 방중 못한 한민구 장관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한-중 간의 대화 채널은 대부분 단절되었거나 봉쇄되어 있다. 장관으로 부임한 지 4년째를 맞고 있는 한민구 국방장관은 단 한번도 중국을 방문하지 못한 채 수교 이후 처음으로 한-중 군사외교에서의 전면적 단절을 지켜보는 중이다. 한-중 군사관계는 2000년 당시 조성태 국방장관 시절에 국방장관 회담을 시작으로 매년 그 범위와 역할을 확대해왔다. 특히 2014년과 그 이듬해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 유해를 우리가 송환해주면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양국 외교부에 이어 국방부에서도 상호 군사교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중단되었고, 언제 다시 대화의 채널이 열릴지는 기약조차 없다. 우리에게는 북한을 관리하는 데 중요한 우방국인 중국이라는 자산이 거의 유실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분명한 사실은 미-중 간 강대국 정치가 소용돌이치는 한복판으로 한반도가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날 미세한 신호들이 계속 발신되는 동안에도 우리 정부는 그 의미를 축소하기에 바쁘다.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의 심각한 압박은 언제 사나운 해일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일 관계마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은 대한민국 생존의 공식이 무엇인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지금이 불안의 시대라면 이를 잘못 관리할 경우 그 불안은 위기로 발전될 개연성이 높다. 이것이 동북아에서 평화공존과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지도자의 비전이 절실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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