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9 09:53
수정 : 2017.03.09 11:04
중국 동북3성 중 하나인 지린성은 바다로 나가는 길이 봉쇄된 내륙의 성이지만 요즘 중국의 어느 성보다 해운업 육성에 열심이다. 지린성은 관할 기업이 선박 1척을 사들일 때마다 우리 돈 수십억원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한 중국 기업에 한해 티이유(TEU: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적게는 60만원, 많게는 100만원씩 화주기업에 인센티브까지 제공한다. 지린성의 출해구는 동해에 가까운 훈춘. 이를 거점으로 바다로 나가기 위해 아직 채산성이 검증되지 않은 항로를 보조금까지 지급해가며 유지하려는 것이다.
<흑룡강신문>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이런 과정을 거쳐 지린성 옥수수 2천여t이 지린성의 두만강 하구 국제물류 거점인 훈춘에서 북한 나진항 1호 부두로 운송됐다. 3월 초부터 향후 수개월간 지린성산 옥수수 2만t을 나진항을 통해 중국 국내인 닝보로 운송하기 위한 것이다. 해상운송을 맡은 해운사는 나진항 1호 부두 사용권을 확보한 것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훈춘창리해운물류유한회사이다. 지린성은 이미 2015년 6월부터 훈춘 출해통로를 이용해 상하이에 컨테이너선을 대고 있다.
같은 해 5월부터 지린성은 훈춘에서 약 75㎞ 떨어진 러시아 연해주의 자루비노항을 경유해 한국의 부산항으로 화물을 수송하는 항로도 시험하고 있다. 우리나라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는 조만간 ‘훈춘~자루비노~중국 남방’ 항로를 중국 국내 무역항로(일명 ‘중외중 항로’)로 개통해줄 것을 중국 정부에 공식 신청할 계획이다.
훈춘~나진항/자루비노항~부산항/중국남방 해륙 복합운송 루트는 최근 북방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척되고 있는 국제 교통물류 회랑 중 일부이다. 훈춘 철도는 내륙으로 지린시(인구 430만명) 및 지린성의 성도 창춘(인구 700만명), 몽골 초이발산 등으로 이어지며, 여기서 다시 북진해 러시아 치타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된다. 이 교통물류 회랑은 국제적으로 ‘투먼 회랑’(러시아명 ‘프리모리예2’)으로 알려져 있다.
좀 더 북쪽으로는 러시아 극동의 관문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중국 쑤이펀허에 이른 뒤 역시 북서진하여 무단장, 하얼빈, 다칭, 치치하얼, 만저우리를 거쳐 러시아 치타에서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되는 국제물류 루트가 있다. 일명 ‘쑤이펀허 회랑’(러시아명 ‘프리모리예1’) 회랑이다. 투먼 회랑이 훈춘(방천)에서 북한 나진항에 연결되듯이, 쑤이펀허 회랑은 나진~하산 철도(54㎞)를 통해 쑤이펀허 회랑 끝단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접속된다.
두 회랑 건설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중국에 투먼 회랑과 쑤이펀허 회랑은 이른바 ‘중국몽’을 현실화시키는 중국 일대일로 구상의 동북아판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다. 중국은 지난 1월 중러극동개발협력위원회를 통해 향후 2년간 러시아 극동지역의 교통물류 인프라 개발 등에 16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러시아 쪽에 약속했다. 러시아 또한 쑤이펀허 회랑 관문항들인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 보스토치니 항구를 잇는 도로 공사를 지난해 착공했다.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한 이 공사에 러시아는 201억루블(한화 약 4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프리모리예1, 2의 체계적인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도 승인했다.
두 회랑 건설은 역외 플레이어의 관심도 끌고 있다. 2016년 9월 세계적인 항만운영사인 디피(DP)월드는 러시아 숨마그룹과 손잡고 블라디보스토크항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매킨지 등 세계 굴지의 컨설팅 회사들도 러시아 극동의 인프라 계획을 컨설팅하고 있다.
두 회랑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내력이 오래됐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21세기 ‘중국몽’이라면, 이미 20년 전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과 함께 제시한 한국의 ‘철의 실크로드’는 20세기 ‘한국몽’이었고, 그 출발은 남북 도로철도를 두 회랑에 연결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2013년 10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계승된 바 있다.
중-러 협력이 본격화하는 그 순간, 남북이 다른 흐름을 타기 시작해 현재 회랑 건설 남북협력은 동력을 상실했다. 개발이 진척됨에 따라 투먼 회랑과 쑤이펀허 회랑은 ‘언젠가 가야 할 길’이었으나 ‘지금 당장 가야 할 길’로 변모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남북이 함께 가야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혼자서라도 가야 한다.
박성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제물류연구실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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