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3 18:00
수정 : 2017.08.23 21:45
정지석 교장 인터뷰
올해로 개교 5년을 맞이한 국경선 평화학교는 여전히 전쟁의 상흔을 품은 땅, 군의 수가 시민의 두배에 육박하는 철원 땅에 위치해있다. 정지석 목사는 국경선평화학교의 1기 학생이자, 교장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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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석 국경선 평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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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이기도 한 정지석 교장에게 국경선 평화학교는 어떤 곳인지를 물었다.
“피스메이커를 육성하고 남북한 평화마을 건설을 꿈꾸며, 평화를 연구하고 실제적인 운동으로 실천하는 곳입니다. 평화는 거저 얻어지지 않아요. 각 분야마다 전문가가 필요하듯, 평화 역시 추상적 가치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죠. 그래서 국경선 평화학교에서 피스메이커를 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화감수성은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특히나 분단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한반도에서는 더더욱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국경선 평화학교는 대안대학을 지향한다. 평화학과 영어, 평화예술, 석학과의 대화, 동서양 고전읽기 등의 커리큘럼을 3년 과정으로 운영한다. 이론 수업뿐 아니라 북한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유기농 농업과 집짓기, 건강 보건 등도 배운다. 국경선 평화학교에서는 옛 북한노동당 철원당사 앞에 있는 소이산에 오르는 평화 순례를 실시하고, 철원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평화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평화의 씨앗들 캠페인’도 실시하고 있다.
정 교장에 따르면 이런 교과과정은 피스메이커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할지에 대해 고민해서 나온 결과다. 그는 한반도에서 필요한 피스메이커는 어떤 컨텐츠를 통해 어떤 인재로 육성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우선 학문적으로는 유럽 내 갈등의 현장인 북아일랜드에서 평화학 석사를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내의 퀘이커교 평화운동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교과과정에 남북한 평화학, 남북 관계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 체험과 기행,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분쟁지역으로 나가 국제적 감각을 익히는 내용을 담았다. “머리로만 그려내는 평화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이론과 실천이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는 매일 오후 세시가 되면 아내와 몇몇 분들과 함께 소이산에 올라 소망을 담아 기도를 드린다. “정상에 오르면 남한과 북한 그리고 DMZ가 한눈에 들어와요. 분단의 실체, 부자유. 그러나 소이산에서 만큼은 분단의 현실이 과거가 된 모습을 봅니다. 평화와 자유에 대한 갈망 역시 듭니다.”
유럽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그는 이곳 철원이 곧 한반도 평화순례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한반도의 비극과 아픔의 역사가 담긴 곳인 동시에 이곳이 어떻게 평화의 가치가 구현되고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빚어져 가는지를 바라 볼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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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석 교장과 국경선 평화학교 2017년 봄학기 수강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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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쉽지가 않았다. 5년전 국경선 평화학교를 마음에 품고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비현실적인 구상이다.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철원은 너무 먼 곳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존경하는 기독교 운동가이자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님의 조언처럼 가지 않은 길은 개척하면 새로운 길이 된다고 늘 되뇌었다.
그러던 와중에 감사하게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고 지냈던 교수님 한분이 마음이 통하셨는지 한국까지 와서 큰 도움이 되어주셨다. 또 27살 한신대학교 출신의 전도사가 함께 뜻을 모아 셋이서 2012년 1년 동안 예비교실 2번을 열 수 있었다.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시민단체 평화 운동가들과 각각의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제는 국내 15명 해외 8명으로 구성된 교수진을 갖췄다.
그는 통일을 생각할때 평화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전쟁 없이 분단된 경우지만 한반도는 지독한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분단된 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수한 배경과 상황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화해와 대화, 평화를 향한 공동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은 단순히 국가영토가 하나 되는 결과가 아닌, 소통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평화의 구현을 위해 서로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대화이며, 전후의 맺힌 상처들을 풀어낼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하는 것이고, 분단의 상징인 단절을 넘어 서로 자유로이 오가는 것을 의미하죠. ”
한반도의 평화, 한반도의 미래는 모두 한 곳을 바라봐야 한다. 남과 북의 대화와 공통된 비전으로서의 평화다. 국경선 평화학교는 그 출발점이라 할 평화프로세스를 제시하고 있다. 닫혀있던 남북관계가 열릴 조짐이 보이는 현 시점에서, 남북의 평화로운 소통의 과정은 그 이후에 따라올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철원/글 사진=이수현 한겨레 평화연구소 청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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