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03 11:23
수정 : 2019.02.03 11:24
|
2016년 2월11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입구 도로. 박근혜 정부의 ‘전면 중단’ 조처로 개성공단에서 내려온 트럭에 실린 화물이 쏟아지고 있다. 김봉규 기자
|
|
2016년 2월11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입구 도로. 박근혜 정부의 ‘전면 중단’ 조처로 개성공단에서 내려온 트럭에 실린 화물이 쏟아지고 있다. 김봉규 기자
|
설 연휴엔 기자들도 쉽니다. 연휴 기간에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덕분입니다. 올해 설 연휴는 2월 4~6일이고, <한겨레>는 3~6일치를 내지 않습니다(일요일인 3일치는 평소에도 휴간입니다). 그러니 한겨레 기자들은 2~5일, 나흘을 쉴 수 있는 셈입니다. 신문이 휴간이라고 <인터넷 한겨레>까지 문을 닫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당번을 정해 연휴 기간에 뉴스를 처리하고, 연휴용 읽을거리를 미리 써두기도 합니다. 설 연휴용 읽을거리 기사로 뭘 쓸까 고민하다 ‘폭망’했던 2016년 설 연휴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2월7일. 일요일이자 설연휴 첫날이었습니다. 집에서 전을 부치고 있었습니다. 설날인 2월8일 아침 차례도 지내고 가족들과 설날 음식도 나눠먹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4호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완전 성공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과 <조선중앙통신>이 낮 12시30분에 동시 보도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제재는 물론 한반도 정세가 격랑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쁜 소식’입니다.
퍼질러 앉아 느긋하게 전을 부치다 말고 벌떡 일어나 <인터넷 한겨레>용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일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통일부는 개성공단 체류 남쪽 인원 축소 방침을 밝혔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기 위한 공식 협의를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두 7일 오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게 설연휴 첫날이 어수선하게 지나갔습니다.
설날인 2월8일도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차례를 지내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 또 기사를 썼습니다. 중국 정부가 7일 오후 남북한의 주중 대사를 불러 항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북한대사한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반대를 무시하고 탄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발사를 강행했다”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한국대사한테는 한-미 정부의 사드 배치 공식 협의 시작 발표에 “항의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습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북한의 로켓·인공위성 발사가 부적절하듯,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공식 협의 시작 발표도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비핵화’ 도정에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중국 정부의 격한 반발을 부를 ‘자해적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설연휴 뒤 첫 근무일인 2월10일, 박근혜 정부가 기어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개성공단사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버팀목이자 마지막 남은 남북협력사업인 개성공단사업의 숨통을 우리 스스로 끊어버린 것입니다. 개성공단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는 공단 입주기업과 협력업체들을 경제적 몰락과 파산으로 몰아갈 ‘자해적 제재 수단’입니다. 이는 1988년 노태우 정부의 남북교류협력 시작 이후 어렵사리 다져온 남북관계를 ‘관계 제로(0)의 시대’로 되돌리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를 30년 가까이 후퇴시킨 조처이기도 합니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자해적 선택’의 후과는 무겁습니다. 개성공단은 3년이 지난 지금도 문이 닫혀 있고, 사드 문제는 한-중 관계의 목에 걸린 가시입니다. 개성공단의 굳게 닫힌 문은 언제쯤에나 다시 열릴까요? 사드 문제는 언제쯤에나 완전 해소될까요?
어쨌든 올해 설 연휴엔 별일 없겠지요? 사실 별일이 생겨도 크게 나쁘진 않습니다. 올해 설연휴 때 전을 부치다 벌떡 일어나 노트북에 앉게 되는 사태가 벌어져도, 아마도, 틀림없이 제가 써야 할 기사는 ‘좋은 소식’일 겁니다. 한반도 정세가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 등 좋은 쪽으로 흐르고 있으니까요.
기자인 제가 설연휴를 푹 쉬는 게 좋은 일일까요, 아니면 전 부치다 벌떡 일어나 기사 쓰는 사태가 벌어지는 게 좋은 일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ㅎ
|
이제훈 선임기자
|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