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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8 22:01 수정 : 2019.03.01 08:04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2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헤어지면서 밝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올렸다. 샌더스 대변인 인스타그램 갈무리

합의 불발 왜?
비핵화-상응조처 간극
김정은, 영변-제재 해제 교환 요구
트럼프 “영변 해체로만 만족 못해”
북, 국제 제재 풀리기 바라는데
미국은 남북경협 선에서 제시한 듯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2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헤어지면서 밝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올렸다. 샌더스 대변인 인스타그램 갈무리
‘거래 조건 불성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밝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합의 무산의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한테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제재가 (합의 무산의) 쟁점이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많은 진전을 이뤘으나 끝까지 가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회담은 사실상 ‘결렬’됐지만 두 정상이 서로를 비난하며 싸늘하게 돌아선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모든 핵의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폐기”(미국)와 “모든 제재 해제”(북한) 요구의 충돌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회견 발언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실제 쟁점은 “영변 핵시설과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김 위원장과, “영변만으로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의 엇갈림에 있다. “영변 핵시설 해체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그 방증이다.

사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제재 완화 조처를 조건으로 달아 ‘영변+알파’를 일찌감치 ‘매물’로 내놨다.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가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이 명시된 ‘9월 평양공동선언’ 5조2항이 그것이다.

비핵화 수준뿐만 아니라 ‘제재 완화’ 방식을 두고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동상이몽이었던 듯하다. ‘제재’ 문제로 좁혀 보면, 실제 쟁점은 ‘전면 해제’(북) 대 ‘부분 해제’(미)가 아니다. 미국 쪽은 ‘국제 제재 레짐(체제)’을 그대로 둔 채 일부 남북 경제협력 사업만 ‘제재 예외’로 하는 방안을 현시점에서 북쪽에 제공할 수 있는 ‘제재 완화의 최대치’로 내민 듯하다. 반면 김 위원장은 예외 방식이 아닌 비록 낮은 수준이라도 ‘국제 제재 레짐’의 완화, 곧 ‘일부 분야 제재 해제’가 마지노선이었던 듯하다. 남북 경협뿐만 아니라 북-중 경협의 실마리를 찾아야 “경제 집중” 노선의 활로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으로선 비록 낮은 수준이라도 남북 경협 예외에 머물지 않고 북-중 경협에도 적용되는 제재 완화가 물러설 수 없는 선이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반도 평화의 명운을 건 역사적 담판은 일단 합의에 실패했지만, 한반도 정세가 바로 악화하거나 충돌 위기로 치닫지는 않을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 내용이 이를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추가 대북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미 군사훈련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36시간 전보다 많은 진전이 있었다”며 “앞으로 몇주 안에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실천을 압박하는 추가 수단을 동원하기보다 추가 협의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레이캬비크 회담’을 상기시켰다. 도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2차 정상회담을 했으나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14개월 뒤인 1987년 12월 워싱턴 3차 정상회담에서는 사거리 500~5500㎞ 지상 발사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서명해 탈냉전의 디딤돌을 놓았다. 오늘의 합의 무산이 더 크고 역사적인 합의를 낳으려는 산고일지 지켜볼 일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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