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3 18:14
수정 : 2019.06.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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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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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 답서 받고
“훌륭한 내용…심중히 생각”
6국, G20 전후 연쇄회담
한반도 평화 시계 돌기 시작
청 “북미 대화 모멘텀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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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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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 외교’가 재가동됐다. 지난 2월27~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갈피를 못 잡던 한반도 평화 과정이 다시 대화와 협상의 궤도로 확실하게 올라서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20~21일, 평양)과 주요 20개국(G20, 28~29일 오사카) 정상회의, 한-미 정상회담(29~30일, 서울) 등을 계기로 한 남·북·미국·중국·일본·러시아, 동북아 6국 정상들의 연쇄 회담을 거쳐 한반도 평화 과정을 이끌 대화와 협상 구도의 큰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남은 문제는 ‘하노이 트라우마’라 불릴 만한 북·미의 ‘깊고 큰 간극’을 좁혀 대화·협상의 그릇에 담을 ‘내용’을 채울 난해한 고차함수 풀이다.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시계’가 다시 빠르게 돌기 시작한 건 분명하다.
북한의 3대 주요 매체인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텔레비전>은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한테 친서를 보내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를 읽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히곤 “만족을 표시하시였다”고 <노동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며 “(친서의)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심중히 생각”은 사전적으로 ‘깊고 침착하게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트럼프 친서’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향후 행보를 가늠할 열쇳말인 셈인데, “북한식 어법으로는 ‘응하겠다’는 뜻”이라고 북한 읽기에 밝은 전직 고위 관계자는 풀이했다.
<노동신문> 등은 친서의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각, 백악관)과 17일(<타임> 인터뷰) 두차례에 걸쳐 “어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의 내용과 관련해 “아름다운 편지, 매우 멋진 편지”(11일)라거나 “꽤 좋다”(17일)라는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노르웨이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에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지 않은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한돌 앞뒤로 주고받은 친서에 긍정적인데다, 양쪽 모두 ‘흥미로운 내용(대목)’을 담고 있다는 반응이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한테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알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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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 중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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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의 ‘친서 외교’ 재가동과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미 양쪽이 ‘이제 (다시) 협상을 할 때’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는 북-미 정상 간 진행되는 친서 교환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정부는 한-미 간 소통을 통해 (친서 교환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친서’ 접수 사실을 공개한 방식과 시점도 해석이 필요하다. 대외용인 <조선중앙통신>에 더해 대내용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텔레비전>까지 동원된 사실을 두고, 김 위원장이 ‘이제는 다시 움직일 때’라는 메시지를 간부들과 인민들한테 알리려 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북-중 정상회담 직후로 공개 시점을 택한 점과 관련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더 높은 상층 대화와 신뢰 쌓기를 전제로 시진핑 주석을 만났음을 일부러 드러내려 한 듯하다”고 전직 고위 관계자는 짚었다.
이제 북·중 정상의 “공통 인식, 견해 일치”(21·22일 <노동신문>)를 토대로 시 주석이 오사카에 들고 갈 ‘김 위원장과의 협의 결과’를 놓고 미·중, 한·중, 한·미 정상이 대화와 협상의 큰 갈래를 타야 한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주초 방한 때 판문점 등에서의 ‘북-미 물밑 접촉’ 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문제는 핵심 당사자인 북-미 사이의 ‘깊고 넓은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제재 유지”를 강조하고, 김 위원장은 이미 미국에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과 “새로운 계산법”을 공개 촉구(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한 터다. 더구나 북·미 모두 ‘하노이 트라우마’ 탓에 ‘실패의 두려움’을 온전히 떨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실무협상이 불가피한데 그에 앞서 탐색과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고공전이 좀 더 이어질 듯하다”(정통한 고위 소식통)거나 “결국 내용 채우기는 적어도 미국 고위 인사가 평양에 가거나 김 위원장이 특사를 미국에 보내는 방식으로 시도될 수밖에 없을 텐데, 아직은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전직 고위 관계자)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더구나 하노이 회담 이후 멈춰선 한반도 평화시계를 다시 돌게 한 핵심 동력은 북·미·중 3국 정상의 ‘고공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와 달리, 적어도 아직은 ‘무대 위 주연’은 아니다. “한-중 협력 강화와 남북관계 진전 노력이 절실하다”는 주문이 정부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까닭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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