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민운동 대모’ 스베틀라나 간누시키나
노벨평화상 후보 10회 추천
러시아 시민운동의 산증인
2017년 북한 벌목공 강제 송환
유럽인권재판소 제소해 막기도
“난민 인정 확대위한 많은 노력 필요”
국내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인권운동가 스베틀라나 간누시키나(사진)는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자주 거론돼온 인물이다. 난민과 불법이주자를 돕는 간누시키나는 러시아 시민운동의 대모이자 산증인으로 불린다. 그가 이끄는 단체는 2017년 유럽인권재판소 제소까지 불사하며 러시아 내 탈북민의 북한 강제송환을 막았다.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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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사무실에서 간누시키나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스크바/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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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를 위해 소개를 부탁드린다.
“저는 소련 시절이던 1990년 만들어져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단체인 ‘모스크바 시민지원위원회’의 대표이다. 또 러시아 대표 인권단체인 ‘메모리알’ 산하 ‘이주와 권리’의 대표도 맡고 있다. ‘메모리알’이 1991년 만들어질 때 저도 창립멤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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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민지원위원회 로고. 시민지원위원회 누리집(www.refuge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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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인권단체인 ‘메모리알’ 산하 ‘이주와 권리’ wind title(www.refugee.memo.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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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민지원위원회’와 ‘이주와 권리’는 주로 무슨 일을 하나.
“지구화 시대 모두가 직면한 문제, 그러니까 불법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체첸전쟁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 내전 등으로 발생한 난민이나 국내실향민을 도왔다. 우리는 국적 불문, 러시아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음식, 옷, 거처, 의약품을 지원하고, 그 자녀들에게 러시아어도 가르쳐준다. 우리 위원회는 러시아 전역에 37개의 지부를 두고 있고, 모스크바 본부에만 40명의 상근자가 근무한다. 매년 3천 명이 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우리 위원회의 도움을 받고, ‘이주와 권리’는 매년 평균 2만 건의 법률자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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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민지원위원회 운영진. 시민지원위원회 누리집(www.refuge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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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께서는 1997년 조지 소로스 재단의 공헌상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메모리알을 대표해 유엔난민기구(UNHCR)의 ‘난센 난민상’을, 2007년에는 노르웨이 헬싱키위원회의 ‘사하로프 자유상’, 2010년에는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으셨고, 2016년에는 ‘대안적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도 수상했다. 정말 유명한 평화상을 많이 받았다.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이미 10번이나 추천되셨다고 들었다.
“2009년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에 추천됐을 때는 어리둥절했고,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수상했다는 걸 알고는 좀 놀랐다. 대통령이 된 지 얼마 안0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2010년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수상했을 때는 내 일처럼 기뻤다. 모스크바 중국 대사관 앞에서 그에게 연대를 표명하는 피켓시위도 했다. 15명이 시위에 참가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15명이었다. (웃음) 지금은 노벨평화상에 대해서는 그저 잊고 산다.”
-러시아를 ‘난민의 지옥’이라고들 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합당한 법과 제도의 부재다. 저는 ‘대통령 직속 인권위원회’, ‘이주정책위원회’ 같은 정부 기구에도 참여해 러시아 난민법의 악법 조항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러시아 난민법에 따르면, ‘불법 출국으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국적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난민 심사가 거부’될 수 있다. 이 조항은 탈북민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북한은 국가 허가 없이는 출국 자체가 불법인 나라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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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민지원위원회 사무실 모습. 시민지원위원회 누리집(www.refuge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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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러시아 내 탈북난민의 수는 어느 정도인가.
“최근 15년 동안 러시아에 난민 신청을 한 탈북민이 300명 가까이 되는데, 그중 단 2명만 받아들여졌다. 2018년말 기준 난민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탈북민은 단 1명 뿐이고, 1년짜리 임시비호 지위를 가진 사람이 총 56명이다. ”
―2016년 2월 체결된 ‘북-러 불법 체류자 상호인도협정’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들었다.
“사실 북한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러시아인이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 이게 무슨 상호조약인가? 반면 러시아에는 많은 북한 노동자가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3만 명 내외라고 한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노동자 숙소를 이탈해 극동이나, 모스크바, 페테르부르그 같은 대도시에 불법체류자로 숨어 산다. 그들 중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고, 이들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014년 우리는 위의 협정이 곧 체결될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해 11월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인을 강제로 넘겨줘선 안된다!”, “야만적이고 수치스런 협정 체결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2016년에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 협정에는 난민신청자나, 그에 상응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그러니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에 불심검문에라도 걸리면 체포되어 바로 송환되는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이민청과 연방보안국(FSB), 북한 대표부 사이엔 모종의 커넥션이 존재한다. 탈북난민 지원과 관련해 가장 어려운 점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다는 거다.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니까. 10여년전 이영철(가명)씨란 탈북민이 우리 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의 한 북한 노동자 숙소를 탈출한 그는 10여 년을 불법체류자로 살았다. 난민 인정 절차를 진행하던 중에 이민청 연락을 받고 나간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이민청 입구에서 경찰에 붙잡혀 연방보안국 직원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대표부로 강제이송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저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결국 그를 한국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 간 이후로 통 연락이 없다는 건 거기서 잘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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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누시키나 대표가 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스크바/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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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권재판소 제소는 어떤 사건과 관련된 건가.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왔던 탈북민 김경혁씨(가명)는 러시아의 한 대도시 근교에서 10년 넘게 불법체류자로 숨어 살았다. 그는 2017년 1월 경찰에 체포돼 위 협정에 따라 추방 명령이 내려졌다. ‘이주와 권리’가 즉각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고, 유럽인권재판소가 그의 강제송환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고, 그는 석방됐다. 그는 얼마 전 한국으로 갔다.”
-러시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요즘 오랫동안 러시아 시골에 숨어 살던 탈북민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현상이다. 저는 난민 지위를 원하는 모든 탈북민에게 러시아가 이를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국 자체로 처벌받을 수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이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고, 북한 당국도 인정하지 않아서 이들의 비호 신청은 대부분 거부된다. 더 다방면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좀 보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한국은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와 달리 단일민족 전통이 강한 나라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외국인 노동이주가 급증했고, 또 작년에는 500명이 넘는 예멘인이 난민 신청을 하면서 난민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러시아 난민의 어머니’로서 우리 한국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
“난민과 이주자는 서로 다른 범주지만, 둘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란 없다. 법적인 차원에서 1951년 제네바난민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난민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법적 근거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 근거다. 난민은 물론이고, 전혀 낯선 나라에 살게 된 이주자도 취약한 존재고, 그들에게는 각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많은 것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고 빠르게 유동하는 이런 시대에, 이주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나아가 세계시민공동체의 이상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반이민, 반난민 슬로건 위에 구축된 정치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추세는 시민사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우리가 쌓아야 할 것은 ‘벽’이 아니라, ‘다리’다.”
‘이영철씨는 한국에서 잘살고 있겠죠?’라며 천진하게 웃던 간누시키나가 최근 탈북 모자의 아사 소식을 듣는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멀고 먼 타국의 무연하디 무연한 77살의 할머니도 탈북민을 돕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영철씨는 한국 어디선가 잘살고 계실까. 우리는 잘살고 있는 걸까.
모스크바/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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