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3 20:02
수정 : 2006.01.13 20:06
방문 유력 광저우·선전은 중국 개방정책 거점
IT 및 위탁가공 단지·생필품 생산기지 등도 둘러볼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나흘째인 13일, 그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최고지도자의 광저우 방문 때를 넘어서는 삼엄한 보안 경비, 특별열차가 광저우 역 근교에 도착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 일행이 광저우를 방문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김 위원장의 ‘중국 남부행’에 무게를 실었다.
김 위원장은 왜 2870km에 이르는 구간을 40시간 가까이 열차로 달리는 ‘중국 남북 종단 대장정’에 나선 것일까?
“선전에 가보고 싶다.”
지난 2004년 4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했다는 말이다. 중국 남부 광둥성에 있는 선전은 광저우와 함께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상징인 ‘주강 델타’의 거점 도시다. 국제자본의 집결지인 홍콩을 마주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01년 1월 방중 때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또다른 상징인 ‘장강 델타’의 핵심 상하이를 둘러봤고, 2004년 방중 땐 중국 제2의 항구도시로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텐진의 발전상을 직접 봤다. 그리고 이번엔 2년 전에 밝힌 바람대로 광저우·선전·둥관을 축으로 한 ‘주강 델타’의 발전상을 보러 온 셈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발전상에 대한 김 위원장의 세차례에 걸친 ‘현장 시찰 및 학습’의 1차 마무리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처 이후 3년이 흘렀음에도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 못한 북한 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는, 고민스런 모색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북쪽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북한 방문 때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의 경제 건설을 위해 중국이 적극 협력할 것임을 약속했다”며 “김 위원장의 이번 산업시찰은 그 때 이뤄진 약속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중국의 개혁개방 지구 시찰을 통해 경험을 흡수하고, 미궁에 빠진 6자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이번 중국 남부 방문 때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구상’하고 ‘설계’한 선전시에서 경제 개발과 개혁의 영감을 얻어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선전시를 방문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상징인 선전시 하이테크 기술산업원구를 꼽는다. 북쪽 관계자도 “북한은 값싸고 풍부한 고급 노동력으로 고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정보기술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등 북한 관계자들은 광저우의 생필품 생산기지 및 중국 최고의 위탁가공 산업단지가 들어선 둥관도 돌아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선전·광저우와 함께 ‘주강 델타’로 불리는 둥관엔 3만여개의 외국기업이 밀집해 있다”며 “북한의 현재 산업발전 단계에 비춰보면 둥관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광둥 시찰을 안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더장(60) 광둥성 당서기의 경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24인 가운데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북한통’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시찰에는 이런 실질적인 목적 이외에, 중국 개혁개방의 중심지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북한 지도부의 개혁개방 의지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이미지 정치’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의 대북 정책방향과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며 “김 위원장의 중국 남부행이 개혁개방 모색과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이번 방중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한편,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머물지 않고 바로 남쪽으로 간 탓에 귀로에 베이징에 들러 6자회담 문제 등과 관련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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