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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개방도시 학습’ 마친 김 위원장
북-중 협력확대·6자회담 재개 긍정신호
17일 귀로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여러 면에서 ‘천지개벽’을 천명한 2001년 1월 방중의 후속편이라고 할 만하다.
2001년 1월에도 김 위원장은 상하이에서 나흘을 머문 뒤 베이징에서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과 회담하는 등 ‘남행 뒤 북행’의 여정을 거쳤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주요 행로를 추적해보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회담’이 주요 목적이라기보다는 ‘중국 남쪽 개혁·개방의 상징지역 방문’이라는 의미가 훨씬 더 커 보인다.
10일 오전 랴오닝성 단둥을 통과한 김 위원장은 11∼12일 우한을 거쳐 12일쯤 광저우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외신을 보면 김 위원장이 15일 밤 선전을 떠난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김 위원장은 대략 사흘 이상을 광둥성의 광저우·선전·주하이 등 중국 경제발전의 성공 모델 지역을 둘러봤다는 얘기가 된다. 김 위원장이 ‘작심하고’ 남행을 결행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남행을 덩샤오핑이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개혁·개방 정책의 확대 심화를 천명한 ‘남순강화’와 비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78년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평균주의’를 비판하면서 실적주의를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 이후 보수적인 군부의 ‘사상강화’ 주장에 부닥치자 덩샤오핑은 우한∼선전∼주하이∼상하이 등 개혁·개방된 남부지역을 순회하면서 중국이 나아가야 길을 몸으로 보여준다. 계획경제를 주장하던 사람들에게는 일침을 가하며 중국의 2차 개혁·개방을 심화시킨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에 대해서도 비슷한 유추가 가능하다. ‘2001년 상하이 구상’과 뒤이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처’ 등이 안팎의 정세로 기대했던 결과를 낳지 못하자,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상징적인 행보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5년 전의 상하이 방문과 달리, 이번 방문에선 김 위원장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이 광저우대학성 내 중산대학을 시찰하면서 “정말 멋있다”고 칭찬했다는 전언이 고작이다. ‘남순’은 있지만 ‘강화’의 메시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굳이 메시지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곳이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도시 광저우·주하이·선전이라는 점이 바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광저우에서 김 위원장은 10여개 대학의 분교를 집중 육성해 젊은이들의 집단거주지역으로 만든 ‘대학촌’을 참관했고, 선전에서는 옌톈항과 통신장비 설계제조업체인 선전 화웨이집단, 레이저 설비 전문업체인 다쭈 레이저 과기공사 등을 시찰했다.
남부의 대표적 컨테이너 전문항구인 옌톈항은 홍콩과 연계 개발해 중국 남부 공업단지의 쏟아지는 수출입 물량을 소화하는 곳이다. 옌톈항은 북쪽 관리들에게 앞으로 원산·남포·신의주 등 개방도시를 설계할 때 크게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민영기업과 첨단 생산시스템의 시찰은 앞으로 북한의 제조업과 첨단기술 산업 육성에서 생생한 체험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을 수행한 북한 관리들이 이 시설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남순강화’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이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을 둘러본 것 자체가 중국의 개방·개혁으로부터 배우고 두 나라의 상호협력을 희망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되리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런 점 등을 들어, 6자회담 재개 및 북-중 협력 확대에 대해서도 “최소한 일정만 보더라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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