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8 20:13
수정 : 2006.01.19 00:43
6자회담 통한 금융제재 돌파 뜻 담겨
북한판 ‘남순강화’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과의 전면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대내적인 개혁·개방의 문제와 대외적 관계개선 문제의 돌파구를 함께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6·17 김정일-정동영 면담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는 남북관계와, 9·19 베이징 공동성명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대미·대일관계 개선을 변함없이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책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대내 개방·대외 관계개선 함께 추진 시도
중국 도움 위해 위폐문제 예상밖 유연 대응
남-북 협력 동시 진행 패턴 답습
18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베이징 회담은 그런 점에서, 이번 방중의 연장선에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불참하거나 거부하려는 게 아니라, △중국의 중재적 역할을 인정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6자회담의 참여를 통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돌파하겠다는 뜻을 비쳤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금융제재와 6자회담은 양립할 수 없다”는 그동안의 북한 주장을 이유로, 6자회담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상당수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
실제로 위폐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조처는 북한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이를 반증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월9일 미국의 금융제재를 두고, “피줄을 막아 우리를 질식시키려는 제도 말살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강경’이 아닌 ‘유연한 대응’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실질적인 금융제재를 취한 쪽이 미국이 아니라, 마카오 당국 실제로는 중국 정부라는 측면도 고려된 것이다.
미국이 취한 북한 자산 동결조처, 일본의 후속조처 등 다방면의 ‘대북 숨통 조이기’를 풀기 위해서도 중국의 협력은 필요한 게 사실이다. 나아가 7·1 경제관리개선조처 등 북한식 개혁·개방조처의 이행도 중국의 도움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방문은 남-북관계 발전과 북-중협력의 강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하나의 패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0년 5월 중국을 방문한 뒤 6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 화해·협력의 돌파구를 열었다. 그 이듬해인 2001년 1월에는 중국 개혁·개방의 관문인 상하이를 방문했다.
2005년 6월17일 김정일-정동영 면담은 제2의 6·15로 비유된다. 올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의 표현을 빌리면, ‘조국통일 운동사에 커다란 자욱을 남긴 해’였다. 이를 전후해 북-중 사이에는 지난해 5월 박봉주 총리의 중국방문, 10월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우이 중국 부총리와 로두철 북한 부총리의 상호방문 등이 있었다.
김 위원장의 이번 광저우·선전 방문은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전면적 협력강화라는 흐름 위에 있는 것이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
전문가 평가
“북, 위폐문제 해결 의지 보인 것”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북쪽이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처를 시행한 지 3년반이라는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은 아마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준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북-중 경제협력과 관련해 좀더 내용을 구체화하고, 사업 관련 채비들을 했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 투자진출에 힘을 받아서 7·1 개혁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해나간다는 의미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6자회담 여부에 관계없이 국내 개혁은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점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이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 북한의 이미지를 개선시킴으로써 6자회담에 끼치는 간접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동유럽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전문가들에게 중국식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정권 교체’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는 뜻도 있을 듯하다.
6자회담과 관련해선 중국과 위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 쪽에 제안할 구체적인 해법까지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쪽은 위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해석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국 쪽 상황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 당위적인 차원에서 한마디 얘기한다면 우리로서는 2년밖에 남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 교류와 연관시켜 활용할 여지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분명히 북쪽이나 남쪽 모두에 특수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남북 협력 프로그램으로 살려나가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개혁·개방 확대·심화 가능할 듯”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북한식으로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7·1 경제관리 개선조처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개혁·개방 기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개혁·개방의 범위와 깊이, 수준이 좀더 확대되고 심화되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개혁과 개방 가운데 방점을 찍는다면 개혁보다는 개방 쪽에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선택적인 개방을 할 것이다.
지역적으로 추가로 개방할 곳을 꼽는다면, 기존에 거론됐던 원산이나 남포도 있지만 조-중 접경지역에 특구를 설치한다든지, 특구보다는 경제활동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준특구 형태가 될 수 있다. 중국을 대상으로 개방할 경우 투자의 범위나 경영권 문제, 지분 문제 등에 대해 중국 쪽에 좀더 많은 운신의 폭을 줘 투자 유인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7·1조처 이후 재정난이나 상품 부족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조금 나아진 것 같고, 인플레이션은 아직 해결이 안 된 상태다. 북한으로서는 경제 전체를 다 끌고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일부 부문별 경제를 중심으로 끌고 갈 것이다.
“북한 체제 안정성 중국에 과시”
오승렬 외국어대 교수(중국어과)는 이번 방중은 지난해 10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에 대한 답방의 의미가 가장 크다. 또 하나는 다소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근 북한 정권의 안정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측면이 있다. 중국 내부에서 김정일 체제가 공고한 것인지에 대해 여러차례 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상당히 오랫동안 중국 남쪽을 방문한 것은 김 위원장 체제의 안정성을 중국에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
이번 방중에서 김 위원장은 좀더 전폭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중국에 요구했을 것이다. 사실 중국 기업들의 북한에 대한 투자 계획은 중구난방이다. 게다가 규모가 크고 장기적인 계획들뿐이고 지린성 등 성 차원에서 얘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이런 투자계획들에 대해 중앙 정부 차원에서 확실한 투자보장을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