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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4 19:42 수정 : 2006.02.14 19:42

한곳에라도 밉보이면 ‘아웃’…줄타기 필요
안보리 추천 ‘단수후보’ 한번도 바뀐적 없어

“‘죽음의 키스’를 피하라.”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철칙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실질적 ‘임명권자’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다. 어느 한나라의 적극적 지지는 죽음의 키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의 ‘지나친 사랑’은 다른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른바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유엔 규정엔 선출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안보리 추천을 거쳐 총회가 승인한다’는 구절이 전부다. 그러나 반세기 넘게 불문율로 자리잡은 선출 방식이 있다. 선출 시기나 방식 모두 안보리 상임이사국 맘대로다. 안보리가 추천한 ‘단수 후보’가 총회에서 낙마하거나 바뀐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안보리는 적절한 시기가 되면 모든 자천타천 후보를 조사해 옥석을 가린 뒤 유력 후보들을 상대로 비공개 회의에서 하나씩 걸러낸다.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 가운데 어디에서도 반대표가 없고, 상임이사국을 포함해 안보리 아홉 나라 이상의 찬성표를 얻은 후보가 나올 때까지 표결이 계속된다. 이를 ‘스트로 폴’(예비투표)이라고 하는데, 투표용지에서 상임이사국은 빨간색, 비상임이사국은 흰색이다. 빨간색 가운데 하나라도 반대하면 14표의 지지를 얻어도 안된다.

과거 선거를 보면 상임이사국 거부권의 위력이 뚜렷이 드러난다. 6대 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이집트)는 재선 운동에 나서 안보리 15개국 가운데 14개국의 지지를 얻었지만, 미국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했다. 4대 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오스트리아)은 미·영·프·소의 지원을 등에 업고 3선에 도전했다가, 중국 벽에 부닥쳤다. 중국은 16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7대인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도 재선에서 복병을 만났다. 미국이 아난을 지지하자, 이번엔 프랑스가 ‘미국 편은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까닭이다. 미국이 갈리 사무총장의 재선을 가로막은 데 대한 프랑스의 보복이었다. 미국과 프랑스의 막후거래로 아난은 연임할 수 있었다.

냉전의 절정기에는 유엔총회 결의로 임기를 늘린 경우도 있었다.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트리그브 할브단 리(노르웨이)는 1950년 재선에 도전했으나, 유엔군의 한국전 참전 결정으로 소련의 반대에 부닥쳤다. 소련이 내놓은 후보는 미국이 반대할 게 뻔하고 안보리는 단일후보를 못내놨다. 리 총장은 결국 유엔총회 결의로 1951년부터 3년간 임기를 연장했다.

사무총장은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막후 타협을 통해 결정된다. 그 과정은 사무총장이 ‘길들여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4일 “안보리 상임이사국 모두가 ‘저 사람은 우리편’이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저 사람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고 믿게 해야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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