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3 19:26
수정 : 2006.04.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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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 주변 수로측량 계획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을 풀기 위한 한-일 외무차관 협상이 타결된 22일 저녁, 한국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1차관(왼쪽 사진)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오른쪽 사진)이 각각 외교부 청사와 롯데호텔에서 기자들에게 회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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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수로측량 ‘EEZ 도발’ 저지, ‘독도분쟁 일상화’ 의도 말려들어
일본-한국지명 등재막고 독도 분쟁화, ‘돌출 외교’ 국제사회 시선 부담
한국과 일본은 21~22일 이틀간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과 야치 쇼타로 외무성 사무차관의 힘겨운 협상 끝에 3개항의 합의를 각기 발표했다. 일본은 6월 말까지의 독도 근해 수로측량 계획을 중지하고, 한국은 6월 독일에서 열릴 국제수로기구 해저지명소위원회에 동해 해저지명 등록 방침을 유보하기로 했다. 외견상 서로 한발짝씩 물러난 셈이다. 양국은 이와 함께 “이번 사안이 양국간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가 획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5월 중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 획정 관련 국장급 협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근본적으로 물리적 충돌을 피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한국은 해저지명 등록의 권리를, 일본은 측량 권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은 합의 뒤에도 공동 발표가 아닌 개별 발표 형식을 취했다. 한국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인 해저지명 등록을 앞으로 필요한 준비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며, 일본은 이를 “한국이 6월로 예정한 해저지명 등록 신청 계획을 취소했다”고 해석했다. 한국은 6월에 지명 등록을 신청하는 것은 아닐 수 있기에 일본의 이런 발표를 묵인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본 쪽도 관보에 실린 측량계획에 한해 철회한 것이지, 언제든 다시 측량에 나설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번 갈등의 근원이 독도 문제에 있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외형상 무승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한 당국자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일본이 마지막에 자신의 ‘부당한’ 요구수준을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애초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측량계획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자신감에서 ‘고자세’를 보였지만, 한국이 국제법 적용 배제나 국내법에 따른 나포 등 ‘초강수’로 이를 꺾었다는 것이다. 이번 차관회담에서 한국이 마지막 두 번의 결렬을 불사하는 자세를 보이고, 일본이 협상을 거듭 요청한 데서도 이런 양상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로서는 이런 초강수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독도 문제의 분쟁화로 가지 않은 채 배타적 경제수역 협상 재개로 처리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은 지난 2000년 배타적 경제수역 협상이 결렬된 뒤 이 문제를 놓고 한번도 협상 자리에 마주 앉은 적이 없다. 다음달쯤 재개될 협상에서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 획정의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본이 수로측량의 카드를 쥐고 흔들기만 해도 우리는 20척의 해경 경비정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또는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독도는 우리의 실효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면 되는 것이지만, 국제법의 논리를 내세워 수로측량과 같은 ‘도발’을 하는 일본의 공세를 봉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 탓에 5월 협상에서는 경계 획정 문제 외에 이번 수로측량과 같은 분쟁의 소지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앞으로의 협상과 관련해 정부의 방침은 ‘한국쪽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어떤 행위도 용인하지 않으며, 중첩수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쪽이 얘기하듯이 중국-일본 사이의 중첩해역에서의 상호통보 제도를 적용하는 문제는 고려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두 나라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으로선 흔들림 없이 단호하고 일관되게 일본의 공격을 방어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의 지적처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일상화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과제도 안게 됐다.
일본은 평가가 엇갈린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국제법에 따라 양국이 서로 냉정하게 대처하고 원만히 해결하려고 노력한 결과”라는 공식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는 배타적 경제수역 협상 재개를 이끌어낸 걸 ‘대성공’으로 평가하는 견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국제법상 정당한 해양조사를 한국의 일방적 요구로 중지한 것은 일본의 해양권익 보호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강경파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강태호 이제훈 기자, 도쿄/박중언 특파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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