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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3 18:43 수정 : 2006.08.14 08:26

유족들 “피해자 모욕”
아시아 세나라 시민들 “총리 참배 저지” 행진
일 극우단체 행사장 위협

그의 영혼은 얼마나 통곡할까. 철마다 붉은 진달래, 흰 찔레꽃 흐드러지고 녹음 울울창창한 고향마을 뒷산 양지녘에 묻혀도 서러울 죽음인데, 죽어서까지 전쟁광들의 음습한 거처인 ‘신사’에 붙들려 있어야 하다니 …!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돼 숨진 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로 합사된 피해자 유족들은 13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가슴을 쳤다. 이날 오후 3시 도쿄 지요다구 일본교육회관에서 열린 유족들의 증언대회장에서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 이금주(86) 회장은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은 여덟달 된 아들을 남겨둔 채로 일본에 강제징집됐고, 헤어진 지 27달 만에 종이 한 장으로 돌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내 남편은 절대로 일왕을 위해 가족과 조국을 버리고 침략전쟁에 스스로 나가 목숨을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며 “반인륜적 전쟁 범죄에 동조하지 않은 남편을 전쟁영웅으로 숭배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은 남편에 대한 모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증언대회장은 소리없이 눈물에 젖었다. 재일동포 3세로, 교토에서 행사 참석을 위해 달려온 이희양(18·리츠메이칸대 사회복지 전공)씨는 “이 회장의 증언을 들으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한 여인의 가슴에 이런 상처를 주고도 일본은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저지하기 위해 도쿄에 모인 한국·대만·일본 세 나라 사람들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에서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이날 증언대회는 그들이 드는 촛불의 의미를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자리였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자신들이 저지른 참혹한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군국주의 부활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조국 일본을 강하게 비난했다. 대만에서 온 원주민 공연단과 재일동포 가수 박보씨는 공연을 열어, 강제 합사 탓에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조상들의 넋을 달래고, 위패나마 고국으로 모셔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침략전쟁 주모자들과 합사된 한국·대만·일본의 희생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연대 행동인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 참가자 1000여명이 13일 저녁 도쿄 일본교육회관에서 ‘도쿄대집회’를 마친 뒤 촛불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 주변 길을 따라 걸으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도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세 나라 시민들의 연대단체인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증언대회를 마친 뒤 촛불행진에 나섰다. 저녁 7시30분께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한 행진 대열은 본격적인 촛불집회를 열고,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계획을 비판하고, 한국·대만 태평양전쟁 강제징용자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취소하라고 외쳤다. 1천여명이 참석한 이날 촛불집회에는 한국과 대만에서 참가한 시민단체 회원들과 대학생,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등은 물론, 일본 사람들도 대거 참석해 열기를 보탰다. 이어 이들은 1시간 동안 일본교육회관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거쳐, 긴카공원까지 2km 가량을 촛불을 들고 행진했다.

한편, 행사장 주변에서는 일본 극우단체들이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 긴장이 감돌았다. 증언대회장 입구에서는 극우단체 회원 몇십명이 행사장에 들어가려는 한국인들을 확성기 차량으로 위협하며 진입을 방해했다. 차량에는 ‘특수공격대’라는 험악한 문구가 내걸려 있었다. 행사 도중에서 ‘확성기 공격’은 이어졌다.

극우단체 회원들은 촛불행진 때도 내내 따라다니며 “일본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 “돌아가라” 등의 구호를 확성기로 내보내며 집요하게 행사를 방해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제지로 다행히 이들과 공동행동 참가자들의 물리적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도쿄/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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