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친구" 지칭하며 방한초청 수락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원수는 20일(한국시간 21일새벽) 한명숙(韓明淑) 총리를 면담한 자리에서 과거 과격한 혁명 지도자에서 실용주의자로 180도 변신한 모습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날 면담은 ㄷ자 소파 배열에서 카다피 원수가 가운데에, 한 총리는 한국측 배석자들이 위치한 왼편에 앉아 환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이날 면담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 의사 피력 등 정치적 이슈도 언급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한.리비아의 경제협력과 투자유치 등을 논의하는데 할애됐다.
카다피 원수는 리비아산 원유의 대(對) 동아시아 공급 확대를 위한 송유관 설치 계획을 설명하며 한.중.일 등의 참여를 제안하는 대목에서는 지도책을 직접 펴보이며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다. 이 지도책은 한 총리에게 선물로 증정됐다.
이 장면은 면담 도중에 접견실 밖에 있던 취재진에게도 이례적으로 공개됐다.
한 총리가 "우리 기업들이 유전사업 참여에 계속 고배를 마셨다"며 지원을 요청한데 대해선 "한국기업이 리비아에서 비즈니스 하는 데 어떠한 장애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리비아 국민들은 리비아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한국업체를 연상할 정도로 한국에 대해 가깝게 느낀다", "한국인은 리비아의 친구" 등 한국을 추켜세우는 발언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과거 관계로는 만족할 수 없고 양국 관계가 한단계 높아져야 한다"며 "건물을 지은 뒤 열쇠를 넘겨주고 떠나는 형태의 `지나가는 투자'가 아니라 합작투자, 기술이전도 하는 `남아있는 협력'이 돼야 한다"며 양국 우호협력 관계의 질적.양적 업그레이드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이 크다"며 "기회가 가기 전에 이 부분에서 한국과 리비아가 많은 협력을 해야 한다"며 경쟁을 유도하는 듯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특히 카다피 원수는 면담 내내 한 총리에게 호의를 표시하는 한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노 대통령을 `우리의 친구'로 표현하며 한 총리에게 노 대통령의 안부를 물었고 방한 초청 내용을 담은 노 대통령의 친서를 건네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직접 개봉해 꼼꼼히 읽어내려간 뒤 "적절한 시점에 방한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이따금 손수건으로 이마와 눈을 훔치는 등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몸을 한 총리쪽으로 굽힌 채 발언을 경청하거나 미소로 화답하는 장면, 가슴에 손을 얹고 사의를 표현하는 장면 등도 문틈 사이로 간간이 눈에 띄었다.
면담에 배석한 정부 당국자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카다피 원수가 실용주의자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면담 내내 우호적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카다피 원수는 당초 예정보다 30분 가량 길어진 면담을 마치면서 현관까지 한 총리를 배웅했다. 10초 이상 길게 악수를 나누며 재회를 약속한 그는 한 총리가 탄 차량이 떠날 때까지 현관 앞에서 서서 두 손을 모으며 예우를 갖췄고 오른손을 살짝 들어 미소로 작별인사를 했다.
송수경 기자 hanksong@yna.co.kr (트리폴리<리비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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