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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흐바야르 몽골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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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흐바야르 몽골대통령 인터뷰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 인터뷰는 애초 12월30일 오후 1시 점심을 겸해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새해를 불과 하루 반나절 남긴 토요일 오후 한국에서 온 방문객에 특별히 시간을 내기로 한 것이다. 29일 밤 8시30분 몽골행 미야트 항공에 몸을 실은 필자가 이날 새벽 0시30분 칭기스 국제공항에 도착, 정부청사 인근 호텔에 여장을 풀 때까지 면담 일정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2005년 7월 대만에서 열린 아세안국가 국제기자 세미나에서 처음 만난 대통령 언론분야 특보로 몽골기자협회 간부인 춘룬바타르 돌고르(46)는 몇번이나 필자를 확신시켰다. “대통령께서 이 기자를 꼭 만나 많은 얘기를 듣고 하고 싶어하신다.” 40도짜리 보드카를 한병 가까이 마시니 한국 출국 전 걸린 독감 기운이 온몸에 퍼져 갔다.
면담 시간을 불과 3시간쯤 남긴 11시께, 호텔로 픽업 나온 춘룬바타르가 뭔가 미안한 표정이었다. “대통령이 워낙 바쁘셔서 오늘 못 만날 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슨 날벼락?
“신의의 문제다. 대통령 면담은 벌써 1주일 전부터 당신쪽에서 성사시키기로 약속한 것인데, 만약 안된다면 더이상 몽골에 머물 이유가 없다.” 춘룬바타르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안될 수 있다는 얘기이니 절대 그런 생각 마라. 어디 가서 우선 식사부터 하자.”
우리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한강레스토랑. 몇 숟갈 뜨는둥 마는둥 하고 우리는 도심에서 40분 가량 떨어진 교외로 향했다. ‘믿어야지, 그럼 믿어야지’. 춘룬과는 벌써 4차례 이상 국내외에서 만나며 신뢰를 쌓아온 터였다. 10평 남짓 게르에서 양구이에 보드카를 몇잔 들이킨 뒤 말에 올랐다. 오후 4시나 됐을까?
반달이 어느새 주황색 색조를 띠기 시작할 무렵 춘룬이 달려왔다.
“6시에 대통령 집무실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어서 서두르자.”
전날 묵던 숙소에서 간단히 옷매무새를 다듬고 정부청사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 청사 복도는 컴컴했다. 이때가 6시 조금 넘은 시각.
20여분쯤 기다렸을까, 다쉬발바르 니암바야르 의전수석이 3층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했다. 건장한 경호원 6명이 입구를 지키고 30평 남짓 집무실에서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필자를 맞았다.
“바쁘실 연말인데 먼 나라, 오랜 친구나라를 찾아줘서 고맙습니다.”
50분간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목소리는 힘찼고 막힘이 없었다. 그는 말끝마다 “국민들이 잘살게 하는 게 대통령인 나의 존재 이유이며 과제”라고 했다. 올봄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남바린 엥흐바야르(49) 몽골 대통령은 12월30일 오후 6시30분 울란바토르 12번가 정부청사 3층 집무실에서 기자와 50분 동안 만나 새해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05년 5월 인민혁명당(MRPP) 출신으로 당선됐다. 1980년대 몽골작가연합 사무총장·부회장을 지냈으며, 저널리스트로 몽골 민주화·역사 칼럼을 많이 썼다.
-대통령께선 영국 리즈대와 모스크바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셰익스피어, 고골, 톨스토이 등 문호들 작품을 몽골어로 번역하셨는데, 요즘도 문학에 관심이 많은가?
=다 지난날 얘기다. 대통령 취임 뒤 그럴 시간을 전혀 못 낸다. 국민들이 어떻게 잘살 수 있을까 그것만이 관심사다.
-새해 화두라고 할까, 가장 염두에 둔 국가 목표는 무엇인가?
=첫째가 일자리 만들기다. 몽골에는 빈곤층과 실업자가 많다. 그들이 맘 놓고 일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의무다. 둘째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낙후돼 지하·광물자원이 풍부해도 개발할 기술이 부족해 걱정이다.
-올해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해 고비사막 녹화와 자원 개발 등을 논의한 걸로 안다. 내년(2007년) 봄 한국을 국빈 방문하는데 정상간 어떤 말씀을 나누게 되나?
=몽골 동부지역 개발 문제, 정보통신(IT) 분야, 북한 관통 대륙철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차근차근 협상해가면 해결이 될 걸로 본다.
-유럽연합(EU)처럼 가칭 ‘아시아연합’ 같은 게 이제 아시아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구체적인 시기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 지역의 평화 유지와 경제공동체 형성 등을 위해 그렇게 돼야 한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이 지역은 종교·언어·경제수준·정치체제 등이 워낙 다양한 게 어려운 점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일본 같은 강대국보다는 몽골이나 한국·베트남 같은 규모의 국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시작하면 좋지 않을지?
=맞는 말이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내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이 우선돼야 한다. 한국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 해결할 방안이 어떻다고 보시는지?
=북한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를 외교 회담으로 해결하려는 쪽이다. 회담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나라가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
-몽골제국 건국 800돌을 축하드린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정복한 나라 아닌가?
=당시 제국은 피정복 국가에 나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유럽 국가들이 하나의 강한 통치 아래 들어감으로써 정치·문화·무역 교류가 급격히 확대됐다. 한 도시에 불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천주교가 동시에 존재하고, 신앙의 자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울란바토르/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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