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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9 21:45 수정 : 2007.01.09 21:51

뉴욕 맨해튼 동부에 위치한 유엔 본부 건물. 세계적 건축가들의 설계로 1949~1950년에 지어졌다. 높이 솟은 38층짜리 건물이 반기문 사무총장의 집무실이 있는 사무국 건물인데, 이 건물은 올해부터 8년 동안 10층씩 나누어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간다. 유엔 조직도 이 건물처럼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다.

[유엔의 재구성] 2부: 유엔의 과제 ③ 더는 미룰수 없는 ‘개혁’

뉴욕 맨해튼 동쪽 유엔본부 건물을 찾는 관광객들은 ‘명성’과 달리, 낡은 구식 건물을 보고 의외의 느낌을 받는다. 이 건물은 올해부터 8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건물 뿐 아니라 유엔 자체도 그런 ‘처지’에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1945년 탄생한 유엔은 환갑을 넘긴 지금 시대에 뒤처지고 비효율적이며 부정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코피 아난 당시 사무총장은 “56년간 유지만 해온 유엔 건물을 전면 수리해야 하는 것처럼 임시방편 개혁만 했던 유엔 조직도 완전하고 전략적인 재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며 유엔 개혁을 강조했다.

유엔 본관 뿐만 아니라 공관 관저 수리로 호텔 생활을 하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은 몸을 낮춰 자신을 ‘유엔 수리공(repairman)’이라고 불렀다. 유엔을 개혁하고 본연의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복원하는 사무총장이 되겠다는 뜻이다.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주문은 난제들이 쏟아지고 있는 21세기에 ‘유엔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질문과도 연결돼 있다.

조직통합 등 해묵은 행정개혁안 산적
상임이사국 진출 외교전 불씨도 여전
나라간 이해관계 충돌…합의 쉽진않아

“효율적으로 일하라”=지난해 3월 아난 전 사무총장은 유엔 행정개혁 보고서를 발표했다. 채용·인사 시스템, 감사, 조달, 신기술 도입 등 수십 가지 항목이다. 번역·인쇄 등 일부 기능을 물가가 비싼 뉴욕이 아닌 다른 지역 외부업체에 맡기는 안과, 긴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보낼 특수평화유지군 창설 계획 등도 포함됐다. 유엔 산하기구들이 서로 다른 사무실과 조직을 운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국가 안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유엔 조직들을 통합·운영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또 안보리에서 통과된 수천 개의 결의에서 부여된 임무가 충돌하는 부분을 모두 찾아내 조정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유엔의 관료주의, 수많은 기구와 프로그램들의 중복, 예산과 인원 낭비 등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안보리 개혁=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은 가장 뜨겁고 민감한 쟁점이다. 거부권을 가진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유엔의 중요 결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구조는 유엔이 만들어진 1945년 당시 2차대전 승전국들의 세력판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제는 안보리가 세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아난 전 사무총장이 지난해 안보리 개혁안을 발표하자,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G4)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겠다고 도전장을 냈다. 상임이사국 자리를 늘려 그 자리에 앉으려는 G4 국가들의 표몰이와 준상임이사국을 늘리고 G4의 진출을 막으려는 한국·파키스탄·아르헨티나 등 ‘커피클럽’ 사이에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졌다. 결국 일본 등이 부결을 우려해 그해 9월 유엔 총회 표결을 포기하면서 이 문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하지만 언제든지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기존 5개 상임이사국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안보리 확대를 반기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단기간에 풀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개혁을 둘러싼 남북 갈등=지금까지 행정과 안보리 개혁 모두 회원국들의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결국 과제는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넘어왔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개혁방안이 제시됐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워런 세이치 유엔 행정담당 사무차장보는 최대 걸림돌로 회원국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을 꼽았다. “192개 회원국들이 있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다양한 지역그룹들이 있기 때문에 합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세계에 조직이 퍼져 있고 지역마다 상황이 달라 더욱 힘들다. 그렇지만 사무총장이 회원국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며 끌고 갈 수는 없고, 전체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 수많은 논의와 협상이 필요하다.”

유엔 내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G77)의 ‘남북갈등’은 유엔 개혁을 계기로 다시 날카로워지고 있다. 유엔 분담금은 미국 22%, 일본 19.5%, 유럽연합(EU) 35% 등 선진국이 82%를 분담하고 있다. 130여개 개도국들의 분담금은 15%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내는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도국들은 유엔이 개혁을 빌미로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과 예산을 줄이고 사무총장에게 과도한 권력을 집중시킨 뒤 결국은 강대국들이 실권을 쥘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반발한다.

유엔 안보리 개편안

미국의 유엔 길들이기?=개혁이라는 껍질 뒤에는 미국과 유엔의 갈등도 숨어 있다. 아난 전 사무총장은 공개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불법’으로 비판했고, 미국은 ‘자신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유엔’이 미국에 맞서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미국이 최근 유엔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는 것은 유엔을 길들이려는 공세라고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아난 사무총장 특별보좌관은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에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지내야할지 모르고, 다른 나라들도 이 코끼리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유엔 전문가인 컬럼비아대학의 에드워드 럭 교수도 “현재 세계적으로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있고, 유일한 초강대국이 있는 가운데 유엔이 제대로 다자적인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반기문 사무총장 시대의 유엔은 이 위태로운 줄타기에서 균형을 잡고 진정한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세계가 지켜보고 있고 우리에게도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 〈끝〉

뉴욕/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e@hani.co.kr


워런 세이치 /사무차장보
“회원국들 변화 필요성 공감
반기문 총장 개혁 성공할것”

워런 세이치 /사무차장보
워런 세이치 행정 담당 사무차장보는 유엔의 ‘살림살이’를 담당한다. 그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개혁이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회원국들이 유엔이 변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역시 유엔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은 걸 알고 있지만, 이제 유엔이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세이치 사무차장보는 “처음 개혁이 추진된 10여년 전에는 많은 회원국들이 왜 변화가 필요하냐고 반발했다. 직원들 사이에도 저항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유엔이 대처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개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의 개혁을 강조했다. “안보리 개혁은 점점 더 긴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며 “안보리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안보리의 대표성 문제가 생기고 다른 기구들의 운영에도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사무총장이 안보리의 개혁을 다 맡아 할 수는 없다. “사무총장이 안보리 개혁을 이끌 수는 있어도 결국은 상임이사국들을 비롯해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와 판단에 달린 문제다. 유엔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조만간 5개 상임이사국의 한계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유엔 개혁이 제자리만 맴돈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사무국의 재정과 조직, 운영의 면에서는 몇 가지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2006년 유엔 총회는 △국제적 회계기준 도입 △독립 회계감독기구 설치 △인력·재정·물류에 새로운 IT 시스템 도입 △새 윤리 담당 부서 설립 △내부고발자 보호 강화 등을 승인했고, 위험관리 시스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2007년 봄에는 인력 운용 개선 제도들이 마련될 예정이다. 그는 2006년 새 인권이사회가 설립된 것도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개혁을 둘러싼 회원국 사이의 오랜 갈등은 걸림돌이다. 세이치 사무차장은 균형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주문했다. “그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 강대국, 개도국, 다양한 그룹들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정 그룹에 유리하게 개혁안을 짜면 중간에 좌초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청사진은 크지만, 실천은 조금씩 이뤄진다. 어렵더라도 사무총장은 유엔의 원래 목표를 믿고 끈기 있는 협의와 설득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뉴욕/글 박민희, 사진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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