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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8일 키상가니의 유엔군 사단본부에서 다국적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반 총장은 이날 본부 시설을 시찰하고 전몰 평화유지군 묘역에 화환을 바쳤다. 키상가니/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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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취임 한달
반기문 사무총장이 지휘봉을 잡은 새 유엔이 한 달을 맞았다. 수많은 난제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유엔의 정글 속에서 반 총장의 행보는 좌충우돌로 다소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인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유엔 개혁 면에서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신속함, 소탈함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새로운 고민거리를 떠안게 됐고 후폭풍 또한 적지 않다. 후세인 사형’ 발언에 호된 신고식
대북사업 자금 관련 미국쪽 의심에
외부감사 지시 등 신속 대처하기도
수단 ‘다르푸르’ 문제 눈앞의 시험대 반 총장은 첫 해외 순방길에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레바논, 다르푸르, 소말리아, 콩고 등 분쟁 해결 과제들이 반 총장의 첫 해외순방을 가득 채웠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는 수단 다르푸르의 대량학살 문제 해결을 위해 수단 정부가 유엔군을 받아들이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경험이다. “경제가 붕괴되고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던 한국이 단결을 통해 활기차고 생산적인 경제강국으로 변신한 경험”은 아프리카에 좋은 모범이 된다는 것이다. 후세인과 인권=반 총장은 2일 첫 기자회견에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 집행에 대해 “사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말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사형에 반대해온 유엔의 기본 입장이나 인권 존중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 총장의 미숙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오준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는 다른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 사형에 대해서는 회원국 간에 합의된 유엔 입장이 있다. 반 총장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미국과 유엔 사무총장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미국 기자가 던진 질문이어서, 후세인 처형에 반대한다고 하면 미국에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함정을 피하려다보니 유엔의 사형제 입장에서 동떨어진 대답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는 “후세인 사형에 대한 반 총장의 발언은 우려스러웠지만, 현재로선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반 총장이 다르푸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인권단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그림자=반 총장 앞에 미국과 유엔의 관계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가로놓여 있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던 일이다.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는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이 북한과 사업을 하면서 제공한 현금이 북한 핵 개발에 전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은 유엔개발계획의 대북사업 감독 부실이 문서로 확인됐다면서,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악용한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유엔이 제공한 자금을 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은 외부감사를 지시하는 등 신속하게 대처했다. 유엔개발계획은 25일 2007~2008년 대북사업 규모는 유지하지만 문제가 제기된 대북사업 계획을 일부 조정한 뒤 다시 승인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유엔개발계획은 3월1일 이후 현금 지급과 북한 정부를 통한 현지 직원 채용 중단, 북한 내 사업 직접감독, 3개월 내 외부감사 완료 방침도 재확인했다. 최성아 유엔 대변인실 대변인보는 “이번 외부감사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응하겠다는 반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이 유엔 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코피 아난 총장 시절의 대표적인 부정부패 사건이었던 석유식량계획 추문처럼 유엔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적절한 절차와 조사를 통해 해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입김은 인사문제에서도 터져나왔다. 반 총장은 유엔 고위직 인선 중 행정운영 담당 사무차장에 유엔 내부에서 계속 일해온 멕시코의 알리시아 바르세나를 임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주장해온 관리경영 개혁으로부터 후퇴해 반 총장이 외교에 집중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미국 쪽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조직개편=반 총장의 최대 현안인 유엔 기구 조직개편은 미국과 비동맹국가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반 총장은 유엔 고위직 인선을 마무리 하기 전 먼저 일부 조직을 개편하기로 하고 청사진을 내놨다. 그러나 군축국을 약화하고 미국 편을 드는 게 아니냐며 비동맹국가들이 대거 반발했다. 반 총장은 군축국을 정무국 산하로 일원화하고, 유엔의 최대기능으로 부담이 커진 평화유지 담당부서를 둘로 분리하는 개혁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비동맹국 모임인 77그룹은 반 총장이 유엔의 핵심기능인 군축 기능을 약화시키고 미국 출신이 이끌게 된 정무국에 종속시키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물러섰다. 뉴욕 현지의 한 외교관은 “반 총장이 처리해야 할 현안 범위가 너무 넓고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도 다양한 데다 한국과 환경이 전혀 달라 곁에서 보기에 총장이 힘든 상황이다. 서울에서보다 훨씬 바빠졌다. 그러나 빨리 적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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