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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아프간을 방문한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실장(왼쪽)이 29일 카불의 아프간 대통령궁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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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외교, 돌파구 마련할까
아프간·미국 설득 만만찮고
‘수감자 석방’ 탈레반 기대 부담
협상 타결 섣부른 예견 어려워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인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이 29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만났다.
면담의 성과가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당장은 구체적인 합의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특사 파견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는데도 문제해결의 가닥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한국인 인질 석방과 관련해 “아프간 정부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이번 사건은 아프간 국민의 품위에 수치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 “여성이 납치된 것은 이슬람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립서비스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정오부터 50분간 진행된 면담치고는 공식 발표 내용에서 실질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날 면담 뒤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정책회의에 다녀온 한 관계자는 “큰 고비도 있고 작은 고비도 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부정적인 기류의 반영으로 볼 만한 분위기다.
탈레반은 처음부터 한국과 협상을 원했다. 또 한국의 특사 파견을 아프간 정부에 대한 압력으로 선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해온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한국 특사가 수감자와 인질을 맞교환하도록 아프간 정부를 설득하기를 바란다고 특사 파견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국내에서도 백 특사가 27일 금요일 오후 현지에 도착한 뒤 주말이 사태의 고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아프간 정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백 특사가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난 건 도착 이틀 뒤인 일요일 오후였다. 이는 아프간 정부가 한국의 요구를 쉽게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양국 정부는 상대국이 하기 힘든 영역과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해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딜레마는 한국 쪽의 협상 방침이 탈레반 반군 쪽의 수감자 석방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비치는 데 있다. 이는 정부가 강온 양면의 카드를 적절히 구사하지 못한 데서 나온 ‘업보’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한국 정부의 본질적인 고민은 아프간 정부의 협력만으로 이번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데 있다. 아프간 정부의 뒤에는 미국과 나토군이 엄연하게 버티고 있다. 이들은 인질과 포로의 석방에 매우 부정적이다. 독일은 비록 1명의 인질이 잡혀 있지만 ‘인질범과의 협상은 없다’며 한국과 다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자국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명제가 ‘테러범들에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사회 규범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를 “국제사회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표현했다.
현재로선 특사외교의 성공 여부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은 만큼 어떤 형태로든 이런 뜻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특사로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방안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대가를 지불해 피랍 국민을 빼올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한국 외교의 역량을 시험하고 있다. 강태호 정의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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