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4 21:42
수정 : 2008.07.1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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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중학교 새 학습지도요령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명기하겠다고 밝힌 14일 오후 독도수호전국연대 회원들이 서울 중랑구 면목공원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일장기와 ‘욱일승천기’를 태우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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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경고도 무시…일 ‘외교’ < ‘국내정치’
정부 ‘주일대사 본국소환’ 강수 사상4번째
■ 일본 중학교 새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관련 부분 ■
“북방영토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지만 현재 러시아 연방에 의해 불법 점검돼 있기 때문에 그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 등에 대해 적확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과의 사이에 다케시마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도 언급해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영토-영역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애초 일본 정부가 계획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 운운 부분 미반영
한-일 관계가 ‘독도 문제’라는 암초를 피하지 못하고 다시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14일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포함하는 조처를 취했다. 문부과학성이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는 일본 땅’이라고 명기할 방침이라는 지난 5월18일 <요미우리신문>의 보도 이후, 한국 정부는 이를 막으려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총력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끝내 무시했다.
일본 쪽은 14일 문부과학성 발표문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직접적 표현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북방 영토(하보마이·시코탄·구나시리·에토로후섬)가 러시아에 불법 점거돼 있다”고 전제한 뒤, 독도를 이른바 ‘북방 영토’ 문제와 같은 차원에서 교육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우리 판단의 기준은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했느냐가 중요하지, 표현 방식이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인식에 따라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밝힌 대응 조처 가운데 특히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정부는 이르면 15일 권철현 주일본 대사를 ‘업무 협의차 일시 귀국’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실상 ‘본국 소환’ 조처하기로 했다.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항의해 주일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것은 지금까지 △1966년 김동조 대사(일본의 대북한 플랜트 수출) △1998년 김태지 대사(일본의 한-일 어업협정 일방 파기) △2001년 최상룡 대사(일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 검정 통과) 등 세 번뿐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독도 영유권 및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에 대한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정상간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관계가 극도로 냉각됐지만 ‘대사 소환’만은 피했다. 그런 만큼 초강경 외교 조처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에 단호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태 전개와 관련해 이보다 더 주목할 대목은 정부가 ‘독도의 실효적 점유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한국 정부가 외교적 방식을 통한 항의와 시정 촉구 수준을 뛰어넘어 독도 및 주변 해역의 생태계·자연환경 보전 조처 등 다양한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독도관리현장사무소 설치 및 독도관리선 건조 등 여러 사업을 올해 안에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게 실행에 옮겨질 경우, 일본 정부도 맞대응을 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양국이 조기에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일본 정부가 해양과학조사를 명분으로 독도 인근 해역에 조사선을 밀어넣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2006년 4월의 전례처럼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대치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
정부는 예상되는 이런 갈등 증폭의 위험성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일본을 압박하는 ‘무기’로 쓰려는 것 같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일본 쪽이 강하게 반발해 온 게 그런 (실효적 점유 강화) 조처들”이라며 “이번에 취할 조처 말고도 더 취할 조처도 있다”고 강조했다.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한국의 우월적 지위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적 외교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독으로 병을 다스리려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독도 문제를 둘러싼 최근 한-일 갈등의 증폭 과정에서 양국 모두 외교보다는 국내 정치적 고려를 중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 안에선 국내 여론을 고려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표현을 적시하려는 문부과학성과, 한-일 관계 등 대외관계를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는 외무성의 치열한 논전이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도 지난 5월18일 <요미우리신문>의 관련 보도 이후 청와대가 강경 대응을 주도하고 있다. 양국 모두 외교당국의 입지가 좁은 셈인데, 이는 사태의 원만하고 빠른 수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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