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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7 20:09 수정 : 2008.07.28 01:38

정전협정 체결 55돌을 맞은 27일 오후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바람개비 조형물 사이를 걷고 있다. 파주/김진수 기자 jsk@hani.co.kr

ARF 의장성명 ‘망신외교’ 근본원인 뭔가
‘금강산사건’ 성명 담으려 무리수 ‘잘못된 전략’
각국 지지 ‘10·4선언’ 거부로 국제공조 이탈도

정부가 아세안지역포럼(ARF) 의장성명에 들어 있던 “10·4 정상선언에 입각한 남북 대화의 지속적 발전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표현을 삭제하느라 무리수를 두면서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망신을 당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곧 △남과 북 사이에 풀어야 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국제외교 무대로 끌고 나간 ‘잘못된 의제화 전략’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부정적 인식이 빚은 ‘외교적 참사’라고 지적했다.

정부 내부 논의에 밝은 외교소식통은 27일 “정부가 애초부터 이번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에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압력이 될 만한 문구를 넣겠다는 전략을 짠 게 문제의 발단”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도중에 자리를 떠 필리핀으로 떠난 것도 이런 전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에 참석한 정부 대표단의 핵심 관계자는 의장성명 발표 직전인 24일 오후 “‘남북 당국간 대화를 통한 금강산 문제의 해결’을 요지로 한 문구를 의장성명에 포함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용준 외교부 차관보는 이날 “금강산 사건을 의장성명에 담는 문제는 실제 회의 상황을 봐서 무리가 없으면 현지 대표단이 재량권을 갖고 추진하는 쪽으로 정부 방침을 미리 정했다”고 밝혔다.

정부 대표단이 다자외교 무대에서 대북 압박이 될 만한 외교 공세를 펴자 북쪽도 강공으로 맞받았다.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24일 아세안지역포럼 외무장관회의에서 “6·15와 10·4 공동성명을 부정하는 정권이 남한에 출현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쪽은 ‘6·15 및 10·4 선언’을 배척하며 ‘금강산 사건’을 밀어 넣으려 했고, 북쪽은 그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그해 7월26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 때 이정빈 외교부 장관과 백남순 외무상이 사상 첫 남북 외무장관회담을 열어 국제무대에서 남북 공조를 다짐한 이래 사라졌던 ‘남북 대결 외교’가 8년여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이를 두고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속옷은 동네 한가운데서 말리지 않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남북 정상간 합의, 곧 ‘10·4 정상선언에 입각한 남북대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부정적 태도는 남북관계 및 국제 외교무대에서 더욱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지난해 10월31일 총회에서 ‘한반도에서의 평화, 안전 및 통일’이라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의 이 결의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과 그 선언에 대한 환영·지지 △10·4 선언의 충실한 이행 권고 등을 담고 있다. 유엔은 2000년 10월31일에도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이번에 정부 대표단이 보인 행태는 다른 참가국들에 ‘국내 정치에 사로잡힌 소아병적 외교’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엔 외교안보의 전략과 비전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역사 인식, 외교적 안목·방법론 등 제대로 된 게 거의 없을 지경”이라고 걱정했다.

그나마도 정부 안에서조차 손발이 맞지 않았다. 외교부 대표단이 싱가포르에서 ‘금강산 사건’과 관련한 문구를 의장성명에 넣으려 총력전을 펼치던 24일,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 문제는 남북 문제니까 남북간에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는 국제 공조를 할 생각이 없다”고 다른 말을 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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