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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8 08:28 수정 : 2008.07.28 08:28

‘ARF 의장성명 내용 몰랐다’는 주장 설득력 부족
정부 외교정책 총체 부실…“외교라인 대수술 필요”

이번 아세안지역포럼(ARF) 의장성명에서 10·4 정상선언 지지 내용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한국 외교가 대망신을 당했지만, 정부 관련자들이 책임지겠다는 말은 없이 변명만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한-미 쇠고기 협상과 독도 영유권 논란 등에 이어 또다시 대형 실책이 나온 것이어서, 외교·안보 라인의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학자나 관료 출신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냉전적 관점의 퇴행적 외교전략이 낳은 ‘참사’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한반도 긴장 완화라는 국제정세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남북 사이에 해결해야 할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을 국제사회로 끌고 간 것이 잘못의 시발점이고, 그런 결정을 한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에만 힘쓰고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과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사전에 의장성명 내용을 몰랐다” “의장성명은 의장 직권 사항”이라고 책임을 모면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회의 석상에서 미리 내용을 조율해 논란을 막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다자회의 경험이 많은 외교관들은 다자회의의 의장성명이 참가국들에 회람되지 않은 채 발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의장성명의 구절은 대부분 주어가 ‘(참가한) 장관들은’ 또는 ‘회의는’으로 돼 있어, 회의장에서 나름대로 컨센서스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정부 설명대로 사전에 의장성명 내용에 무엇이 들어갈지 몰랐다면 외교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더 큰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당시 논란을 빚자 “의장성명은 지난 1년간 일어난 여러 일을 아울러서 담는다고 한다”며 “(10·4 선언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별 의미도 없는 구절을 빼기 위해 정부가 외교적 무리수까지 동원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야당들은 일제히 유명환 외교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장관 1명 교체만으로 문제가 해소된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로 정책의 난맥상은 심각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임동원·이종석씨와 같은 총괄 조정역이 이명박 정부에는 없는데다, 부처와 기관별 권한과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잇따르는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특정 인물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전략보다는 현장의 임기응변과 편의주의가 난무하는 배경이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외교 역량의 한계가 드러났는데도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며 “현장 실무자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총체적인 외교라인 및 정책에 대한 재점검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탈냉전·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국가이익을 재정립하기 위한 심층적인 재검토를 더 늦춘다면 이런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수 이제훈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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