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미 쇠고기 업계에 조언
강기정 의원, 정부 문서 열람 확인
이태식 주미대사 등 정부 고위 당국자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적인 수출을 위해 미국 쪽에 적극적으로 조언한 것으로 27일 드러났다. 이런 내용은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소속의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외교통상부 문서 열람을 통해 밝혀냈다.강 의원이 전한 내용을 종합하면, 외교부 북미통상과는 쇠고기 추가협상 고시가 관보에 실리기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이태식 주미대사에게 “상부 지시사항이니 미 업계 및 정부 쪽을 접촉해 수입 재개 초기 단계에서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한다”는 문서를 보냈다. 외교부가 말하는 ‘상부’란 청와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강 의원은 해석했다.
이어 이 대사는 같은 달 27일 패트릭 보일 미국식육협회(AMI) 회장, 배리 카펜터 전미육류협회(NMA) 사장, 콜린 우돌 전미육우협회(NCBA) 의회담당 진행이사를 대사관으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미국 업계 쪽은 “잔류물질 규정 등 수입위생조건 위반을 완전히 방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잔류물질이란 방사능·합성항균제·항생제·중금속·농약·호르몬제 등 광우병 위험물질 이외에도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성분을 말한다.
미국 업계의 이런 발언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위생에도 문제가 있음을 자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이 대사는 “(수입위생조건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게 어렵더라도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그런 사례(수입위생조건 위반)가 발생해 언론에 보도될 경우, 이는 쇠고기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좋은 구실을 제공하게 될 것이므로 미국 업계의 특단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대사는 그로부터 닷새 뒤인 이달 2일, 에드 샤퍼 미 농무장관을 만나서도 “초기에 미국이 수입위생조건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품질이 좋은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대사는 “미국 내 쇠고기 리콜과 관련해 국내 언론에 즉각 보도돼 한국민들에게 미국 쇠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리콜 발생 시 언론보도에 앞서 한국 정부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면 이 문제가 한국 내에서 불필요하게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서를 열람한 강기정 의원은 “초기에 ‘소나기만 피하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의 대처 방안을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업계에 귀띔해주는 내용”이라며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미국 업계가 인정하고 있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보다 미국 쇠고기 업자를 위해 발벗고 뛴 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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