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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공릉동 공릉사회종합복지관에서 열린 탈북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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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묘한 외교현실 외면
중 ‘무리수’충돌… 실리잃어
12일 중국 당국이 김문수·배일도·박승환·최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 대표단 4명의 베이징 기자회견을 물리적으로 저지한 사건은 탈북자 문제뿐만 아니라 한-중 관계 및 정치인들의 자세 등 민감한 여러 사안들의 단면을 한꺼번에 드러내면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사건을 통해 김 의원 등은 소기의 정치적 효과를 얻어냈을지 모르나 탈북자 문제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렸고, 중국은 국제적 관례와 거리가 있는 ‘무모한’ 행태로 빈축을 샀으며, 한국 정부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 경위=김 의원 등은 지난 10일 중국 내 탈북자 수용시설을 돌아본 뒤 11일 베이징으로 가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탈북자 인권문제를 주제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중국 당국에 통보했다. 중국 외교부는 12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기자회견을 허락할 수 없다고 공식 통보했다. 그런데도 김 의원 등이 베이징 시내 셰러턴 창청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하자 중국 당국은 ‘공안으로 추정되는 괴한’ 20여명을 동원해 이를 저지했다. 정상적인 공권력 집행 때 법률적 근거와 법 집행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는 법치국가의 상례를 중국 당국은 무시했다. 김 의원 등은 일부 기자들과 함께 폐쇄된 회견장에서 11시간 동안 괴한들과 대치하며 기자회견을 물리적으로 막은 주체와 근거 법률을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 있는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한국 국회의원쯤이야 이렇게 다뤄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한 게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 중국 쪽의 항변=중국 외교부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이번 기자회견을 불허한다고 밝혔음에도 김 의원 등이 기자회견을 강행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 당국이 북-중 사이 가장 예민한 문제의 하나인 탈북자 문제에 관해 북한의 눈치와 비위를 살펴가며 한국 정부에 적지 않은 협력을 해 왔음에도, 이 문제의 외교적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중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해 결과적으로 중국 당국이 탈북자 문제를 조용히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할 여지를 도리어 좁혔다는 것이다. 쿵취안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나라당 방중 의원들 가운데 “김 의원만이 주중 한국대사관 초청으로 외교비자를 발급받았고 나머지 의원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했다”며 “이들의 중국 내 기자회견은 방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입국한 뒤에는 방문국의 법규를 지킬 의무가 있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 전에 당국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정부 태도=정부의 한 당국자는 외교채널을 통해서 중국 당국에 거듭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국회의원들의 경우라 하더라도 외국에서 특히 중국에서 면책특권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며, 해당국의 주권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현지 한국대사관은 물론이고 베이징 주재 일부 한국특파원들 그리고 기자회견에 앞서 중국 외교부 쪽에서도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기자회견을 금지한 중국 정부의 지침이나 정책에 대해서 다른 나라가 문제로 삼는 것은 내정간섭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다수가 패자=회견장 주변에서 꼬박 밤을 새워야 했던 한 외교관은 “의원들도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장에서 현실성 떨어지는 ‘주장’만 내세워 ‘건수’ 올리기에 만족하는 대신, 중국과 북한을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서 실질적으로 사태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전문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 등의 기자회견은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더구나 ‘탈북자의 난민지위 인정’ 등 현 북-중 관계에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요구를 제시한 것은 현실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거나 애초에 다른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니었느냐는 지적을 낳았다. 묘수와 정답이 있을 수 없는 탈북자 문제를 둘러싼 이번 사태는 결국 한·중 양국과 탈북자 문제 두루 패자로 내모는 결과가 됐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강태호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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