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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오른쪽)를 방문한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1일 오전 국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추진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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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결~연기’ 누구 책임인가
김태효 청 기획관, 지난해부터 협정체결 물밑주도
청와대·국방부, ‘날치기 주역’ 외교부에 책임 떠넘겨
외교부 “억울” 발뺌…총리실도 ‘일사천리 의결’ 한몫
추진 과정, 보류 과정 모두 아마추어였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군사정보협정) 처리 과정은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정운영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협정을 국민 몰래 기습적으로 처리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 들끓는 비판여론을 모르쇠 하다 여당이 제동을 건 뒤에야 서명 체결 1시간 전에 허겁지겁 보류해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뒷수습 과정에서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오히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기류가 엿보인다. 이번 사안은 청와대의 ‘총괄 기획’과 국방부의 ‘실무 추진’, 외교부의 ‘대리운전’, 총리실의 ‘막판 지원’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라는 관측이 많다.
■ 청와대의 기획책임질 인물로 최우선적으로 오르내리는 인물은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다. 김 기획관은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군사협력의 필요성을 적극 피력한 바 있다. 김 비서관은 당시 “한-일 정보보호협정과 한-일 군수지원협정은 국방장관이 일본에 가서 진행할 것”이라며 “정상 간에는 두 협정의 취지에 공감하는 수준의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김 기획관이 이번 이 대통령의 남미순방 길에 동행하지 않은 채 국내에 남았던 대목이 눈길을 끈다. 김 기획관이 이 대통령으로부터 한-일 정보협정 처리의 특명을 받고 국내에 남아 처리를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정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사안이 불거진 뒤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 행보를 보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7일 이번 협정의 국무회의 비밀 통과가 언론에 알려져 거센 비판이 일자, “남미순방에서 돌아오면 외교안보 쪽에서 언론에 따로 설명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은 공개 설명은커녕 언론 접촉조차 꺼리고 있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나섰던 정무수석실이나 홍보수석실은 “외교부 일”이라며 이날까지 침묵했다. ■ 국방부의 실무 추진
국방부는 이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실무 담당 부처였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2011년 1월 한-일 국방장관 회담 당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제기됐다”는 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2012년 6월까지 1년5개월여 동안 국방부의 국제정책분야 실무자들이 일본 쪽 담당자들과 함께 협정의 골자를 만들고 체결의 과정을 준비했다. 이 협상 처리의 주체가 국방부에서 외교부로 바뀐 것은 협정 체결 직전인 지난 5월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에서 1년여를 추진해오다가 교류하는 정보의 범위가 군사정보만이 아니라 일반 정보도 있는데다 저쪽에서는 외무대신이 협정 체결의 주체로 나서니 포괄적으로 외교부가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지난 1년5개월여 동안 일본과의 협상을 주도하면서 공청회 한번 열지 않는 등 의견 수렴 절차를 철저히 무시했다. 협상 진행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결정된 것 없이) 실무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거나 “군사협정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니 비공개”라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하곤 했다. 국방부도 26일 협정의 국무회의 비밀 처리 뒤 논란이 불거지자 “국무회의 절차 등은 외교부에서 처리한 것”이라며 책임을 외교부로 미뤘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책임론이 나오는 부분에 대해 “국방부 공식 입장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부부처의) 공동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얘기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 외교부의 대리운전
외교부는 26일 ‘국무회의 날치기’의 주역을 맡았다. 외교부는 국무회의의 실무를 책임지는 총리실, 행정안전부 등의 협조를 얻어 협정 안건을 ‘즉석 안건’으로 올렸다. 이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을 수행하고 있는 김성환 장관을 대신해 출석한 안호영 제1차관은 협정에 대한 제안 설명을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협정의 비공개 처리가 논란을 빚자 “협상 상대국인 일본의 사정을 고려해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처리했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국무회의 날치기의 실무 악역을 맡게 된 것은 군사 관련 협상이긴 하지만, 법리상 협상의 체결권자가 외교부 장관이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정부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은 12개 나라와 맺었다”며 “이 가운데 국방장관이나 차관이 직접 서명한 것은 2건뿐이고, 이마저 외교부 장관의 위임을 받아 서명하는 형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단순히 날치기 악역만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외교부가 처음부터 한-일 국방당국간 협상에 참여하는 등 협정 관련 실무에 관여해 왔기 때문이다. 외교부도 책임론과 관련해 억울하다며 발뺌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 당국자는 “외교부는 ‘일본에 대해 국민감정이 안 좋은데 이렇게 밀실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총리실의 막판 지원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26일 오전 정부중앙청사 19층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토론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당시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정부 관리는 “이 협정을 의결하면서 국무회의에서는 토론 한번, 이견 하나가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에 국무회의 의장인 김황식 총리가 협정 제안 설명을 요청한 뒤 안호영 외교통상부 1차관이 요지를 설명했고, 아무런 이견이 없자 김 총리는 원안대로 의결했다. 총리실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실, 행정안전부가 준비한 이날 국무회의는 이 협정 안건을 ‘즉석 안건’으로 올려 언론에 공개한 안건 목록에서 빼놓았다. 또 국무회의가 끝난 뒤 열린 김용환 정부 대변인(문화부 2차관)의 브리핑에서도 이 협정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었다. 김 차관은 27일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해, 누리꾼들의 빈축을 샀다. 박병수 선임기자, 김규원 안창현 하어영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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