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18 19:26
수정 : 2016.03.18 21:24
일 고교 교과서도 ‘아베 뜻대로’
대변인 성명서 낮은 수위 대응
12·28 합의·한미일 공조 염두 둔듯
정부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극히 절제된 반응을 나타냈다. 반대의 뜻을 직접 상대방에 통고하는 ‘항의’나 ‘규탄’ 대신 스스로 한탄한다는 뜻이 강한 ‘개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성과로 규정하며 북한 핵 문제에 대응하는 한·미·일 제재 공조를 중시하고자 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18일 정부가 발표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지난해까지 이어온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기조가 다르다.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이라는 입장은 똑같지만 이런 주장을 반영한 교과서 검정에 대해 ‘강력히 개탄’하며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했을 뿐이다. 개탄은 스스로 분하게 여겨 한탄한다는 뜻일 뿐, ‘반대를 전한다’는 뜻은 담고 있지 않다.
반면 2013년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나왔을 때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강력히 항의’한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근본적인 시정’을 촉구했다. “역사에 눈감는 자, 미래를 볼 수 없다”는 높은 수위의 표현도 등장했었다. 2014년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때에도 따지고 나무란다는 의미의 ‘강력히 규탄’이란 표현을 사용했고 “일본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강도가 약해졌다는 지난해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때에도 정부는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정부의 ‘낮은 수준’의 대응은 12·28 합의 이후 예견된 바다.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합의에 대해 정부는 ‘외교적 성과’로 규정하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번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교과서 왜곡의 시정은 ‘요구’하면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무엇보다 대북 제재 외교를 최우선 순위로 강조하고 있는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보다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고 있다. 실제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달 초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연설에서, 예년과 달리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4·13 총선 이후 12·28 합의의 후속 조처를 실행해나가기 위한 포석도 이번 정부 대응에서 읽힌다. 일본 언론들은 최근 한-일이 이달 안에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열어 12·28 합의에 따른 후속 조처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가 열리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만이다. 또 이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도 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정부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대응이 나온 것”이라며 “12·28 합의를 외교적 성과라고 규정한 데다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정부와 청와대가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갈등의 불씨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짚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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