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11 14:38
수정 : 2018.06.1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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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협상 스타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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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담판 앞두고 협상스타일 관심
판을 바꾸려는 대담한 전략적 선택
형식보다 결과에 집중하는 목표지향성
협상에선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
명분보다 실리 추구하는 실용주의자
합의하면 이행 강조하는 과제점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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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협상 스타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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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협상 스타일은 올해 들어 두 차례씩 열린 남북 및 북-중 정상회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웃끼리라고 해도 정상회담을 60일 사이에 네 차례나 하는 경우는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 김 위원장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결과를 추구하는 ‘목표지향형’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래의 기술’을 즐긴다면, 김 위원장은 ‘거래의 결과’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특성이 제일 잘 드러난 것은 지난달 26일 판문점 북쪽 지역에서 이뤄진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다음날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실제로 거의 모든 의전을 생략한 채 진행됐다. 한 외교관은 “위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다가서려는 김 위원장의 집요함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목표지향적 스타일은 이따금 파격이라는 행태로 나타난다. 김 위원장은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첫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 각본에 없던 장면을 몇차례 연출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다시 군사분계선을 건넜다. 남북 수행원들과 악수를 하고선 바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상대의 손을 꽉 잡는 특유의 악수로 기선을 제압하곤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김 위원장이 어떤 파격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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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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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파격은 ‘즉흥적인 쇼’가 아니다. 그보다는 ‘철저하게 결과를 계산한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 3월 말 김 위원장을 만났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김 위원장을 “정상회담을 철저히 준비하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김 위원장을 대면한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앞두고 각종 보고서를 읽으며 논리적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폼페이오의 분석이 잣대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명분보다 실리를 좇는다. 이런 ‘실용주의적 모습’은 지난달 7~8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열린 시진핑 주석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3월25~27일 베이징에서 열린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을 평양으로 초청해놓고도 다롄을 찾았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난관에 부닥치자 중국이라는 힘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이런 김 위원장을 ‘객관적 역학관계를 보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참매 1호’가 아닌 ‘중국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를 찾은 데서도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행을 중시하는 것도 목표지향적 스타일임을 방증한다. 김 위원장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뒤 만찬장에서 여러 차례 이행을 강조했다. 만찬에 참석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낙심을 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합의를 이행하는 데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은 자기가 제시한 과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고자 절치부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두번째 남북정상회담 제안에도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녹아 있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한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목표지향적 스타일은 그가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과감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전쟁위기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았던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대화 자세로 전환했다. 이후 북-미 정상회담까지 밀어붙이면서 ‘승부사의 기질’을 증명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다. 그리고 둘러가기보다 핵심에 직접 접근하는 걸 좋아한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의 이력이나 신상정보는 단편적이다. 김 위원장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한 2009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한 공립학교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스위스 유학 시절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렸고, 야심에 차 있었으며, 농구를 좋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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