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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당 힘받는 실용론, 숨죽인 개혁론 |
열린우리당 내에서 실용주의 노선이 선명한 색채를 드러내면서 당내 개혁파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잦아들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작년말까지만 해도 "개혁 없인 경제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개혁파 의원들은 지난 4일 열린 의원 워크숍 이후 "경제회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자"는 분위기에눌려 한껏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한 초선의원은 13일 "실용과 개혁을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정책논의 과정에서 개혁을 외쳐온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개혁을 빼고 실용주의만 강조하면 어색해 하던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경제분야의 대표적 개혁정책으로 꼽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논의가 완화쪽으로방향을 틀고 있는 점은 당내 정책기조의 변화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로 꼽힌다.
지난달 26일 노무현 대통령이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와 관련해 "실질적내용을 갖고 논의하라"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을 때만 해도 "합리적 완화"를 주장해온 실용주의 지도부와 "현행 틀 유지"를 고수해온 개혁성향 의원의 입장이 팽팽히맞섰지만 결국 여권내 논의의 흐름은 실용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이와 관련,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4일 당정협의를 갖고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적용되는 자산기준의 상향조정을 포함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문제를 논의할 것으로알려졌다.
자산기준이 현행 5조원에서 2∼3조원 가량 `소폭' 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지만,작년말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자산기준 5조원을 전제로 논의된 점을감안하면 정책기조의 분명한 변화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목할 대목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출총제 완화논의에 난색을 표해온 개혁성향의원들이 조심스럽게 신축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노 대통령의 출자총액제한 관련 발언을 "당 지도부의 성급한 완화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평가했던 한 의원은 "경제활성화를 고양하는데 도움이된다면 한번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용주의 분위기 속에서 과거 분식회계 사면으로 통칭되는 증권집단소송법 개정 논의도 21일로 예정된 법안심사소위에서 과거 분식회계를 집단소송에서 2년간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 처럼 실용주의 노선이 순항하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그만큼 당내 반작용도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당장은 경기부양론의 위세에 밀려 개혁파들의 목소리가 수면 아래로 잠복해있지만 4월2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개혁 대 비개혁'이라는 이분법 구도로 선명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고 2월 임시국회에서도 개별 법안 단위로 소규모의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출자총액제한 완화나 증권집단소송법 개정 문제도 소관 상임위내의 여전한반발 등을 감안할 때 당 지도부의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론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한 재야파 의원은 "개혁은 우리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며 지지층을 유지하는 길"이라며 "이념.노선의 지향점이 분명치 않은 실용노선과는 충돌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당 의장 경선에 출마할 예정인 재야파의 장영달 의원도 지난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원칙없는 실용주의가 우리당의 위기를 불러온 진정한 원인"이라며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는 현 지도부와의 차별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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