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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3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김효석 민주당 의원에게 교육 부총리를 제의했던 일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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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 비방은 유죄이고 노무현 대통령 비방은 무죄인가?
선거에 나선 후보자 비방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엇갈리게 나와, 인터넷에서 열띤 논란을 부르고 있다.
원심(1,2심)에서 유죄라고 판결한 ‘이원범 전 의원의 노무현 대통령후보 비방’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었다.(2004년 12월21일)
원심(1,2심)에서 무죄라고 판결한 ’박근혜 총선 후보에 대한 회사원 김아무개씨의 홈페이지 비방’은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었다.(2005년 2월10일)
지난 10일 박근혜 대표에 대한 인터넷 비방글이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기사에 달린 토론공간마다 “박근혜 비방은 유죄이고 노무현 비방은 무죄인가”라고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왜 대법원은 이원범 전 의원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결하고, 회사원 김아무개씨에 대해서는 ‘유죄’라고 판결했는가.
더욱이 두 사건은 각기 여야의 영수를 상대로 한 비방이었다. 이후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된 두 정치인을 상대로 한 비방이었고, 두 사건에 대해 동일한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두 사건이 유사하지만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피의자 신분이 다르고, 비방 대상이 다르고, 비방한 공간과 내용이 다르다. 두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상이한 법률적 판단의 타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한겨레>는 동일한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재판부가 유사한 두 사건에 대해 상이한 판결을 내리게 된 경위를 추적하기 위해, 관련 판결문을 구하고 법조문을 뒤졌다. 편집자
박근혜 비방과 노무현 비방의 구체적 내용
무엇이 유사한 정치인 비방에 대한 다른 판결을 내리게 만들었는가.
‘노무현 비방 건’과 ‘박근혜 비방 건’은 △사건의 내용 △적용 법조 △판결의 취지가 서로 다르다.
이원범 전 의원의 노무현 후보 비방내용 = 2002년 12월 대선 때 200여명이 참석한 한나라당 대전 중구 지구당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이 빨치산 출신”이라고 발언함.
김아무개(34 회사원)씨가 2004년 3월 박근혜 의원 홈페이지(minihp.cyworld.nate.com)의 자유게시판에 올린 비방내용 = “이제 독재자, 살인자의 딸로서 사회봉사 활동하면서 아버지의 죄를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시지. 왜 그리 말을 해도 못 알아먹고 사시나… 쯧쯧 당신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고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연좌제가 없어졌다지만, 이번 국회에서 마지막 비웃음은 정말 추하기 그지없었답니다. 당신은 아니오. 자격이 정말 없소. 왜냐, 당신 아버지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누명을 벗게 먼저 하시고, 진심 어린 맘으로 사회봉사 고아원 양로원 가서 봉사활동을 하시지. 꼭 내 말 명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버지와 똑같은 길로 끝이 좋지 않으니, 그리고 박 의원 아닌 딴 사람은 토달지 마시길….”
김씨는 박근혜 대표의 홈페이지에 모두 16차례에 걸쳐 위와 같은 비방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정보통신망 이용관련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250만원의 유죄를,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 노무현 비방 관련 판결
△적용 법조 : 공직선거법 ‘제251조(후보자비방)’
검찰은 이원범이 2002년 12월 대선 때 한나라당 대전 중구 지구당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이 빨치산 출신”이라고 한 발언이 후보자 비방에 해당한다고 봐서 기소했고, 원심(1·2심)은 이게 유죄라고 봤던 것인데,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이 사건에 적용된 법 조문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를 비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 쟁점 사항
초점은 이 발언이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맞춰져 있다.
이와 관련해, 원심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동인 및 그 배우자를 비방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피고인의 연설동기·목적·내용·표현수단·전후 정황을 종합할 때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어 위법성 조각사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원범의 발언이 “비방행위에 해당한다는 원심판단은 사실오인·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고 했다. 즉, 비방 발언인 것은 맞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이 그러나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위 법 조항 제251조의 단서 조항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데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이 부분의 판결문이다. “제251조 단서에 의한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단서조항의, ‘적시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함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면 족한 것이고, 세부에 있어 약간의 상위가 있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 함은, 반드시 공공의 이익이 사적이익보다 우월한 동기가 된 것이 아니더라도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거기에 상당성이 인정된다면 이에 해당한다(99, 2003, 2004 판결). 기록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장인인 권오석이 노동당 창원군당 부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국보법 위반,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사망한 사실이 대검찰청이 발간한 <좌익사건실록> 제10권에 기록돼 있어, 2002년 4월 임시국회 법무부 장관의 답변을 통해서도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등 피고인의 발언에 일부 과장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피고인의 발언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저하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후보 가족의 좌익활동 전력을 언급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적절하게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자료를 제공하려는 공공의 이익 또한 인정되고 거기에 상당성도 있다고 할 것이다.”
■ 박근혜 비방 관련 판결
△ 적용법조 :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와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죄,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죄 등 3가지
‘박근혜 비방사건’은 공직선거법 제251조(후보자비방)이 아니라,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와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죄,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죄 등 3가지 법 조항의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원범 전 의원의 노무현 후보 비방사건과는 적용 법조문 자체가 다르다.
△ 쟁점 사항
쟁점이 된 것은 제93조의 1항으로, 원심은 이 조항을 형식적으로 해석·적용하게 되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정치적 의사개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게 돼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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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의 관련 조항(제93조 1항)을 형식적으로 해석·적용하여 김씨가 한 것과 같은 행위를 탈법으로 보게 되면 후보자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지만, 그와 정치적 의견을 같이 하거나 달리 하는 국민은 정치적 의견 개진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국민의 정치적 의사개진의 자유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되어 위헌(과잉금지 원칙의 위반)이라고 판단될 여지가 있다”는 게 원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 취지다.
제93조 1항은 “① 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보궐선거 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창당준비위원회와 정당의 정강·정책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도서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다만, 후보자가 제60조의3(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제2호의 규정에 의한 명함을 선거일전일까지 직접 주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제93조 1항의 적용에 한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이 부분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의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박근혜를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를 게시한 것으로서 공직선거법 제255조 제2항 제5호, 제93조 제1항에 해당하는 행위라 할 것이고, 여기에 헌법합치적 법률해석 방법을 적용하여 이 부분 피고인의 행위를 공직선거법 제255조 제2항 제5호, 제93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볼 여지는 없다고 할 것이며, 이와 같이 피고인의 행위가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공직선거법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및 제59조 단서 제3호의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원심은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표현자유를 광범하게 인정하고 무죄를 판결한 것에 비해 대법원 재판부는 “김씨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국회의원 후보자인 박근혜씨를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를 게시한 것은, 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탈법한 방법에 의한 문서의 배부·게시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중잣대 논란과 별개로 ‘새로운 현실에 대한 낡은 잣대 적용’한 사법부 비판 본격화
이처럼 정치인에 대해 폭넓은 의사 개진의 자유를 인정한 원심 판결과 달리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문서를 게시'했다고 보아 유죄 판결을 내린 대법원 재판부에 대해 “유사한 사건에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호창 변호사는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 등 다양한 선거운동 방식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후진국에나 있는 일”이라며 “구시대적인 선거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네티즌들은 두 사건의 대법원 주심이 김영란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두고, “노무현 비방은 무죄이고 박근혜 비방은 유죄냐”라며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을 지낸 작가 유시춘씨는 지난 12일 한 인터넷언론(데일리서프라이즈즈)에 [김영란님, 혹 컴맹이신가요?] 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어, 김영란 대법관을 비판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감시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시춘씨는 이 칼럼에서 “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의 딸’이라 비방하였다는 네티즌을 유죄라 하면 인터넷의 바다에 떠다니는 모래알보다 많은 지지댓글은 어찌하려는가”라며 “사법권력이 더이상 신성불가침, 절대무오류의 성곽 안에 안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이에 바탕한 새로운 표현문화에 눈감은 사법적 판단에 대한 본격 문제제기가 일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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