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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2 18:20 수정 : 2005.03.02 18:20

2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대회’에 참가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배상촉구' 일본 반응 분석
파장확대 꺼려 '의미축소' 공동보조
"일본정부 작은 성의 보일것" 관측도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이후 일본 정부와 언론 등의 분위기는 ‘당혹’과 ‘신중’으로 요약된다. 일본 정부 등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두 나라 정부 사이에서 논의되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와 한국 정부의 후속 조처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파장이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다.

◇ 언급 자제하는 정부=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한국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국내용’으로 평가하면서 되도록 직접적 거론을 피하려 애썼다. 이런 태도는 “국내 사정을 생각한 발언일 것”이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논평에서 잘 배어난다. 외무성 관계자들도 최근 독도 문제로 한국내 대일감정이 급속히 악화된 것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 강경한 자세를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정치권과 언론에 대해서도 냉정한 대응을 당부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대응은 일차적으로 노 대통령 발언이 가져다준 당혹감이 반영돼 있다. 과거사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정례 정상회담까지 열면서 우호관계를 다지던 노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들보다 더 강력한 어조로 일본의 과거 책임을 질타한 것을 일본 정부로선 당장 ‘소화해내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에선 대응을 자제하면서 노 대통령 발언이 실행에 옮겨질 것인지를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 발언의 파장이 확대되는 데 대한 경계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선 과거사, 특히 이미 정리된 것으로 여겨온 개인배상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한국 정부의 한-일 협정 외교문서 공개 이후 한국에서 재협상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에 정면으로 대응하면 자칫 재협상론에 기름을 붓고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 보조 맞추는 언론=일본 언론들도 대체로 정부와 인식을 함께하면서 한국 내부 사정에 대한 이해와 차분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기류를 가장 잘 반영해온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는 1일 간판뉴스인 저녁 7시 뉴스에서 이례적으로 노 대통령의 발언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데 그쳤다. 과거사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해온 〈아사히신문〉은 “대일 융화책을 기본으로 해온 노 대통령도 국민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일본에 대한 비판은 한국 국내용이라며 가볍게 보기 쉬운 일본에 대해 3·1 독립운동 기념일이라는 특별한 날을 택해 뜻을 전달하고 싶다는 노 대통령의 비통한 메시지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외무성 당국자의 말을 따 “일본 정부 안에서는 한국민의 반일감정 고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일본 정부로서는 교류사업 등을 통해 “한국내 반일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 쪽도 과거사 문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한국 여론을 자극하는 말들을 삼갔으면 한다는 요청이 담긴 것이라고 전했다.

◇ 김정일 변호사?=그렇지만 일부에선 노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 때문에 국민들의 대일감정에 편승하는 것처럼 몰아가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집권 자민당의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참의원 간사장은 “노 대통령의 정권 기반은 불안정하다”며 국내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또 납치문제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북한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이 담긴 데 대해 〈산케이신문〉은 1면 해설기사를 통해 “북과 동조”했다고 비난했으며, 민영방송 출연자들은 노 대통령을 ‘김정일 변호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 전망=노 대통령의 발언을 국내용으로 치부하려는 일본 쪽의 분위기에 비춰 당장 일본 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과거사나 북한 문제를 대국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새롭게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를 담은 것이라는 한국 쪽의 인식과는 거리가 한참 멀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쪽도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현안들에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은 나오고 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아사히신문' 3월2일치 사설 요지
"사죄·배상 거론 당혹스럽고 식민지배-북납치는 다른문제"

일본 <아사히신문>은 2일 ‘대통령 연설에 대한 당혹감’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완곡하게 비판했다. 일본 내에서 한-일 관계와 한반도 사정에 대해 비교적 깊은 이해와 건실한 의견을 제시해온 <아사히>의 시각도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에 비춰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이를 발췌해 요약한다.

86년 전 독립운동이 일어난 3월1일은 국민의 축일이 돼 한국민의 민족의식이 크게 고양되는 날이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에서 느낀 당혹스러움은 부정할 수 없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한국인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의 피해를 입은 쪽의 생각에 일본인이 둔감해지기 쉬운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노씨가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자국의 역사 바로잡기를 정권의 실적으로 삼고자 하는 상황에서 나온 국내용 연설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죄’를 말하고 ‘배상’이라는 말을 공연히 사용하는 것은 한-일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우리들로서도 당혹스럽다.

대통령은 납치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과거 식민지 시대에 자행한 일을 잊어버린 듯한 일본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못박아 두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배라는 역사와 북한의 납치는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대일 비난과도 상통하는 듯한 말투는 한-일 관계에 역효과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과의 과거청산을 위해 두번이나 방북했으나 교섭의 진전을 방해한 쪽은 오히려 북한이다. 대통령은 그런 사정을 냉정하게 봐 주기 바란다.

북한 문제 해결에는 한-일의 협조가 우선돼야 한다. 일본은 역사를 더욱 분명히 주시해야겠지만 한국이 공연히 차이를 강조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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