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4일 사퇴함에 따라, 행정도시건설 특별법의 국회 통과로 촉발된 한나라당 내홍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하지만 행정도시 이전 반대파 의원들 다수가 김 원내대표의 사퇴와 상관없이 수도지키기 운동을 지속한다는 생각이어서, 당 갈등이 수습 쪽으로 가닥을 잡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김 원내대표가 전격적으로 사퇴를 발표하고 나선 것은 사실상의 ‘당내 당’ 체제로 악화되는 당내 갈등을 돌파하려는 일종의 ‘국면 전환’ 시도로 보인다. 또 뚜렷한 돌파구 없이 당내 갈등이 이어지면, 당 전체가 난파하거나 쪼개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이번 사태가 정면돌파의 강공책만으로는 풀기 힘든 상황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2일 행정도시 특별법이 처리된 뒤의 당 내분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두나라당’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만큼 통제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총선 때 박근혜 대표와 함께 ‘투 톱’을 이뤘던 박세일 의원이 정책위의장직에 이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전재희 의원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전체 의원 120명 가운데 행정도시법 반대 의사가 확인된 의원의 수가 4일 현재 51명에 이를 정도로 반대론의 세가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정책에 대한 찬반이나, 대선후보 경쟁 등 당내 역학구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사태 전개가 심상찮다는 분석이 많았다. 반대파 의원들이 이날 “행정도시법의 처리를 대가로 과거사법 등 3대 법안이 연기됐다”는 ‘빅딜설’을 제기한 것도 당 지도부엔 큰 부담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표 등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빅딜설을 부인했지만, 이런 논란 자체가 인화성이 높은 사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가 김 원내대표 등의 이런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박 대표는 김 원내대표의 사퇴 회견 직전 김 원내대표에게 “당론을 지킨 것인데 왜 사퇴하려고 하느냐”며 “전체가 책임질 일을 왜 혼자서 떠맡으려고 하느냐”고 극구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들 말로는 박 대표의 결기는 여전히 만만찮다고 한다. 당내 반대파들이 김 원내대표의 사퇴 이후 공세를 접을지도 불투명하다. 이들은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결단”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수도지키기는 원내대표의 사퇴와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행정도시법에 대한 반대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의사표시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의 사퇴에 대해 “수습책이 아니라 미봉책”이라거나, “빅딜설을 해명해야 한다”고 압박을 계속하기도 했다.
반대파의 핵심인 이재오 의원은 “책임지는 모습은 좋지만 이른바 ‘빅딜’ 의혹은 당의 명예가 걸려 있어 원내대표의 진퇴와 관계 없이 더 상세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도부를 겨냥했다. 그는 “당내 갈등을 더 확산할 필요는 없다”며 “그러나 야당은 늘 일정한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 당장 지도부와의 대치를 풀지는 않을 뜻임을 분명히 했다. 김문수 의원도 “원내대표의 사퇴는 당이 어지럽게 돼 국민에게 실망을 준 것에 대해 책임감 있게 결단한 일”이라며 “그러나 수도지키기는 수도분할 기도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니, 당연히 계속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반대파 내부에는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출구’로 받아들이는 기류도 있어, 그의 사퇴가 당 내홍 수습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당 관계자는 “반대파 의원들 가운데는 당이 결딴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특히 다음주 초 후임 원내대표를 선출하게 되면, 당내의 관심이 빠르게 경선으로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권 정광섭 기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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