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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공보관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정부과천청사를 떠난 7일 청사 부총리실 앞에 걸린 사진들이 그의 재임 중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과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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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문 의혹’ 여론진화 불가피 “직무 힘들다” 본인판단·사퇴요구 수용
후임엔 윤증현·강봉균·정덕구씨 거론 노무현 대통령이 7일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이 부총리 본인의 강한 사퇴의지와 국민여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변화된 기류는 6일 오후께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노 대통령의 ‘유임’ 방침에 변화가 없다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좀 더 지켜보자”고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사퇴 요구가 들끓고, 추가 의혹들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7일 김종민 대변인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새로운 의혹이 문제가 된 것 같지는 않다. 김 대변인은 “이 부총리와 관련해 특별히 새로운 사안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부동산 매입 당시의 위장전입 의혹과 언론의 잇따른 문제제기만으로도 ‘경제 수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웠다는 판단을 이 부총리 자신이 했고, 노 대통령도 이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부총리 사퇴는 이기준 전 부총리 사건에 이어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검증 시스템의 한계를 비롯해 현 정권의 인사정책과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 부총리 후임으로는 현직 경제관료 가운데는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금융권과 재계의 지지를 받는 점이 강점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강봉균 의원과 정덕구 의원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의원은 재경부 장관과 한국개발연구원장을 지내 경제관료들을 통솔하는 데 적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례대표인 정덕구 의원은 강한 추진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경제관료 출신인 홍재형 의원도 거론되지만, 새로운 맛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도 적임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지만, 최근에 원내대표에 선출됐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낮다. 이밖에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교육부총리로 거론됐던 김효석 민주당 의원 등도 거론되고 있다.
백기철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위장전입 ‘도화선’퇴진압력 불질러 ■ 의혹∼사퇴 숨가빴던 8일 매각과정 의문도 제기
허위계약 부분등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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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7일 부인의 부동산 투자 문제로 결국 중도하차했다. 지난 2월28일 <한겨레>가 이 부총리 부인이 농지를 사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지 꼭 8일 만이다. ‘위장전입’ 밝혀져 도덕성 타격=이 부총리가 사퇴한 결정적인 요인은 부인 진아무개(61)씨가 농지 소재지에 살지 않으면서 위장전입을 통해 농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씨는 1979년 말부터 경기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일대 논밭 5800평과 전북 고창군 선동리 밭 1500여평을 매입하기 위해 현지에 살지도 않으면서 그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총리의 재산은 지난 7년 동안 65억원 가량 증가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위장전입을 한 지역의 임야와 논밭을 매각해 불어난 것이다. 이런 불법적인 토지 매수는, 비록 오래전 일이라고 하더라도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이 부총리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한겨레>는 지난 2월28일 이 부총리의 재산공개 내역과 등기부 등본 등을 확인한 뒤 현지 취재를 통해, 이 부총리 부인이 경기 광주시와 전북 고창군 등 농지 소재지에 실제로 거주한 사실이 없음을 밝혀냈다. 이 부총리도 7일 재경부 간부들에게 사의를 밝히면서 “20여년 전 처 소유의 부동산을 등기하는 과정에서 편법 의혹이 일어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일대의 임야와 논밭 등을 매입할 당시 실제 거주하지 않던 주소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등 몇차례의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한 사실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정치권 퇴진 압력=청와대는 지난 2일 “이 부총리의 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 없다”며 이 부총리에 대한 재신임 방침을 밝혔지만,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어 이 부총리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이 부총리의 자진사퇴와 청문회를 요구했으며, 열린우리당 의장 후보로 나선 염동연·장영달 의원까지 나서 이 부총리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부총리는 3월1일에는 3·1절 행사에 불참하고 국회의원들과 골프를 쳐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매각과정 의혹도 뒤늦게 불거져=위장전입 사실에 더해, 이 부총리 부인이 광주 일대 땅을 매각한 시점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광주 땅 가운데 밭을 사들인 사람이 전세 7천만원짜리 집에 사는 트럭운전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제 땅 구입자에 대한 의혹도 커졌다. 그러나 이 부총리 부인한테 이 땅을 사기로 2003년 10월30일 계약한 유아무개(53)씨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으로 미뤄볼 때, 매각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은 상당 부분 해명된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이날 ‘부동산 매매예약 계약서’ 등을 직접 공개하며, 일부에서 제기한 ‘허위 계약 의혹’ 등을 부인했다. 이 부총리도 이날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2003년 10월 처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어떤 불법이나 편법 또는 이면거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재성 황상철 기자 san@hani.co.kr
삼고초려 입성…투기의혹 낙마 ■ 이 부총리 1년1개월 경기띄우기 성공 평가
성장중심주의 역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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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소회의실에서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헌재 부총리 등 부동산투기를 한 공직자들의 사퇴를 주장하며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과 철거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지난해 2월 노무현 대통령의 ‘삼고초려’ 끝에 경제사령탑으로 복귀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년여 만에 ‘부동산 투기 의혹’을 헤쳐나오지 못해 낙마했다. 그동안 몇차례 고비를 넘겼던 이 부총리였지만, 이번에는 예기치 않은 암초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번 사퇴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해 경제정책 전반을 책임지는 경제 부총리가 정책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과 신용불량자 대책, 종합투자계획을 뼈대로 한 경기 활성화 정책 등 이 부총리가 재임 기간 동안 추진해 온 경제정책들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앞으로 누가 후임을 맡더라도 ‘일자리 창출을 통한 내수 회복’이라는 경제 정책의 큰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 집권 2기를 맞는 노 대통령은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현 교육부총리)의 후임에 ‘미스터 구조개혁’으로 불리는 이 부총리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청와대 쪽이 일찌감치 그를 경제 사령탑으로 낙점했지만, 그가 완강히 고사했기 때문이다. 이 부총리는 취임 일성부터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가와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외환위기 당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수십년 쌓인 금융·기업 부실을 털어냈던 것처럼, 이번에는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킬 것으로 기대됐다. 이 부총리는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모토로 삼아,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과 신용불량자 대책, 종합투자계획 등 각종 정책들을 쏟아냈다. 또 지난해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도 경제 부처들을 잡도리하면서 경제에 대한 탄핵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소모적인 갈등도 많았다. 특히 지난해 7월 ‘국민은행 자문료 파문’을 겪기도 했고, 이후 이 부총리가 이른바 ‘청와대 386’을 겨냥해 “경제 공부가 부족하다”거나 “이래서야 시장경제를 해먹겠냐”라는 폭탄 발언을 쏟아내 난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또 ‘성장’을 앞세우는 화법으로 불필요한 ‘성장-분배’ 논쟁의 빌미를 제공했는가 하면, ‘1가구3주택 양도세 중과 연기’ 문제를 놓고 청와대 쪽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올 들어 청와대와 이 부총리 사이에 그동안 쌓였던 앙금이 풀리고 협조 관계가 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개혁성이 강한 한 인사는 “지난해 말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위해 앞장서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이 부총리의 모습을 본 뒤부터 닫혔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부총리가 공직에 들어갔다 물러나기는 세번째다. 모두 ‘불명예’ 퇴진이어서 공직생활 중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1979년 35살의 나이에 재무부 국장 자리인 재정금융심의관에 올랐다가 이른바 ‘율산 특혜 금융 사건’으로 옷을 벗었고, 98년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복귀해 2000년 재경부 장관으로 영전했으나 여권 실세들과의 마찰로 7개월 만에 밀려나는 불운을 겪었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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