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7 18:41
수정 : 2005.03.1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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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한 조셉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을 배웅한 뒤 돌아오며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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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사안 부담탓 발언자제
격앙된 심경 누르며 ‘원칙적 대응’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날로 악화하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의 침묵에는 깊은 고민과 함께 감정적 앙금도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한일관계는 외교적인 문제인 만큼 노 대통령이 갖고 있는 인식과 판단은 정부 성명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며 “정부의 공식 기조와 대통령의 의중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으로 규정한 정부 성명에 노 대통령의 인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서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경우에 뒤따를 부담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이날 성명이 근래에 보기드문 강경 기조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심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날 성명을 포함한 일련의 대일 강경조처가 노 대통령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최근 일본쪽의 움직임에 격앙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에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이 중심이 돼 대일외교 기조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마치 지난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일본내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일본의 벼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공언하면서 대일관계가 급속히 강경쪽으로 선회했던 것과 비슷하다. 김 전 대통령의 경우 돌출성 발언으로 사태가 전개됐지만, 이번에는 정부 차원의 성명 발표라는 다소 정제된 방식으로 나온 점이 다를 뿐이다.
노 대통령의 침묵에는 ‘일본에 대해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했던, 지난 2년 동안의 ‘조용한 외교’를 반성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쪽의 무성의한 조처에 대한 격분, 앞으로의 원칙적 대응 방침 등도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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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한-일관계 주요발언
△“과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2003년 2월10일 당선자 시절, 일본 여야 지도부를 만나)
△“과거사 문제는 대통령 선언에 의해 요구하고 종결지을 문제가 아니라 양국 지도자와 국민이 미래를 바라보는 원칙에서 끊임없이 상호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2003년 6월7일, 한-일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
△“지난날 한-일 관계가 몇차례 발전을 멈추고 뒷걸음치기도 했는데 이는 중요한 과거사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몇몇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발언했던 일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2004년 2월27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 등 한-일 협력위원회 간부 접견)
△“우리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을 흔히 지각없는 국민들이나 인기에 급급한 한 두 사람의 정치인이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 지도자 수준에서는 해선 안 된다.”(2004년 3월1일, 3.1절 기념사)
△“제 임기 동안에는 한국 정부가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본 정부와 국민이 가진 인식이 더 중요한 만큼 일본 국민 내부에서 합리적인 지혜가 나오길 바란다.”(2004년 7월21일, 제주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
△“동북아의 지도적 국가 국민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 보편적 수준에서 지도적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일본 국민들이 결단할 때라고 생각한다.”(2004년 12월17일, 이부스키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
△“한-일 관계를 고속도로처럼 환하게 뚫으려면 장애물을 있는 것을 없다고 하지 말고 직시하면서 치우기 위해 양국 정부와 국민이 적극 노력해 가야 한다.”(2005년 1월27일, 한-일 우정의 해 개막행사 연설)
△“과거사 문제를 처리하는 독일과 일본의 서로 다른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두 나라의 다른 태도에 따라 이웃나라로부터 받는 신뢰가 다르다. 과거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를 떨쳐버리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2005년 2월25일,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
△“두 나라 관계 발전에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한다. 그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 방식이다. 일본의 지성에 다시 한번 호소한다.”(2005년 3월1일, 3·1절 기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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