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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8 11:49 수정 : 2005.03.18 11:49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본회의에서 2월22일을 `독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한 지난 16일 오후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시마네현 중심도시 마쓰에 시내에서 차량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쯔에/연합



[분석] 러시아·중국·일본우파에 보내는 일본의 야욕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억지 주장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은 과거와 몇가지 측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까지는 독도영유권 주장의 주역은 주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타로 전 총리를 비롯한 극우파 정치인들이었다. 그때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기는 했지만 일정한 냉각기가 지나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의 주장으로 축소시키면서 적당히 봉합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은 시마네현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는 형식으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화했다. 일본의 다음 수순은 아마도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회에서 독도영유권을 의결하는 절차가 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적당히 미봉되기 힘든 성격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번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단순히 독도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도를 포함 북방의 쿠릴 열도, 남방의 센카쿠 섬(중국은 조어도(다오위타오)라고 부름) 등 러시아 및 중국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분쟁지역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세적 영유권 회복 전략과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도에 대한 강경 드라이브를 통해 이들 지역의 영토분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러시아와 중국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 및 중국과의 영토분쟁은 이미 지난해에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된 바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차대전의 패배로 빼앗긴 쿠릴 열도 4개섬의 전면 반환을 요구하면서 11월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인 2차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불참방침을 발표했다. 이는 일본과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이 매우 격렬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전주곡인 셈이다.


’한-미 동맹’ 균열 보이자 일본 “절호의 기회” 틈새파고들기

일본이 올해 들어 영토분쟁의 1차 드라이브 대상으로 한국을 선택한 배경 또한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문제에 있어 한국과 공동대응 노선을 취해왔던 일본이 독도문제를 통해 갑자기 이를 내팽개쳐 버린 인상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욘사마로 대변되는 한일 양국간의 화해 무드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일본의 대한 강경 선회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북핵문제와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을 현안을 둘러싼 미묘한 견해차이로 한미 동맹관계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자 일본이 그 틈새를 파고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일본은 한미동맹의 이완에 따라 한국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가 약화됐다고 보고 독도문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시 2기 정권 출범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미-일 동맹의 강화국면 속에서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업은 일본은 지금이야말로 독도분쟁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본이 1965년 한일 협정 체결이후 독도문제를 한국정부에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때였다. 나카소네 정권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추구했다. 나카소네는 ‘론야스(레이건 대통령의 이름인 로날드와 야스히로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친미적 노선을 걸었다. 나카소네 총리 자신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 데 이어 1986 한일외무장관에서도 일본쪽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일, 북핵 문제에서도 ‘대북제재’ 강경 선회

▲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등 과거사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이를 주도하는 일본우익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8월16일 패전 58돌을 맞아 옛 일본군 복장을 한 일본우익 청년들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고 있는 모습. AP연합
최근 일본은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즉각적인 대북제재라는 강경 자세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고이즈미 이후의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를 비롯한 우파 정치인들은 대북제재를 연일 소리높이 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초 도쿄에서 열렸던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두 나라는 처음으로 대만 문제를 공식거론해 중국을 자극했다. 두 사안에 있어 모두 일본이 강경론을 주도하고 미국이 이에 제동을 거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 역시 과거와는 정반대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강경론을 주도하고 일본이 한국 등 주변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이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독도, 쿠릴 열도, 센카쿠 셈, 대북제재, 대만문제. 상호 관계가 없는 별개의 이슈처럼 보이는 사안들이다. 여기서 일본이라는 공통항이 숨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도 세계2위의 경제대국 신화를 실현한 일본이 아닌 2차대전 당시의 군국주의적 일본을 연상시키는 일본인 것이다. 그 뒤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버티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국가는 언제든지 무력으로 침공하겠다는 선제공격론을 신봉하는 군사적 거인 미국과 과거의 야만적 침략행위에 대해 반성, 사과할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 일본의 결합은 과거 식민지 침탈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그래서 불안하고 수상쩍다.

독도문제를 단순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태극기를 두른 한 시민이 18일 오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 관련 조례 제정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


일본이 무모해 보이는 외교적 카드를 꺼낸 이유는?

국제관계론에서 볼 때 일본의 이러한 강경외교노선은 쉽게 이해가 안된다. 일본은 사실상 주변 모든 국가들과 외교적 마찰과 대립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일 동맹이라는 든든한 배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외교노선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무모한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왜 일본은 이렇게 무모하기까지 비치는 외교적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가.

외교전문가들은 일본우파의 평화헌법 개정 전략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현재 일본의 헌법은 2차대전 패전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가 제정한 것으로 군대보유권과 교전권을 박탈했다. 다시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신 미국은 미일안보동맹을 통해 일본의 안보를 책임졌다. 일본은 오직 경제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냉전체제의 해체와 소련의 붕괴이후 일본의 우파들은 미국에 의존한 안보체제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이 언젠가 일본에서 군대를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 냉전체제의 붕괴이전부터 미국은 과도한 국방비 부담 때문에 경제대국 일본에게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유지 비용을 분담시켜나가면서 자위대 창설과 재무장을 묵인했다. 그러나 일본 우파의 자나깨나 소망은 헌법을 개정해 일본도 다른 국가들처럼 자위대가 아닌 합법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우파들은 이를 ‘보통국가’라고 부른다. 일본의 정계는 집권연립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제1야당인 민주당도 모두 개헌에 찬성하고 있어 정치적으로는 큰 장애물이 제거된 상태이다. 남은 과제는 일본내 개헌반대 여론의 극복과 한국,북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반대이다.

일본 우파, 숙원인 개헌위해 ’개헌 명분 찾기’ 골몰

일본 우파는 개헌절차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개헌의 명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행 헌법하에서는 일본의 국가안보가 결코 보장될 수 없다는 안보 환경의 조성이 절실한 것이다. 한국,중국,러시아 등과의 영토분쟁은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외교적 손실이지만 이 목적에 관한 한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일본의 우파가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북핵문제이다. 북한이 계속 강경한 쪽으로 나아갈 수록 일본의 안보환경은 한층 불안해지고 그만큼 개헌의 명분은 강화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2002년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일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텃지만 우파는 납치문제을 부각시켜 이를 좌절시켰다. 논란이 되고 있는 납치 사망자 유골의 진위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우파들은 아마도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1~2개 소유하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헌의 명분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미국이 과연 일본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강공 드라이브와 개헌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일 것이다.

▲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회원 30여명이 18일 오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독도 침략 규탄과 과거청산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미국, 일본과 공통이해 불구하고 노골적 일본 두둔 어려워

미국은 우선 독도를 포함한 영토분쟁에서 노골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기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은 국제적으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지만 미국은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특히 독도 문제에 있어 만약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는 듯한 입장을 취할 경우 한국의 반미 감정을 통제불능의 상태로 폭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80년 광주민주항쟁때 미국이 전두환 쿠데타세력을 지원한 데서 형성된 한국내 반미 감정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앙금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미국의 정책입안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미국과 일본은 일정 부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 긴장의 불씨를 남겨놓음으로써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또 북한이 핵무기를 일부 보유하게 되는 상황이 미국으로서는 수천억 달러가 투입되는 미사일 방위사업(MD)를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기대했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되지 않자 MD사업의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일본의 우파도 자신들의 정치자금줄인 방위산업체들이 MD사업이 추진될 경우 얻게될 물량확보를 기대하는 점에서 미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면 한국에게는 어떤 대응카드가 있는가.

독도문제의 경우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고수해온 ‘조용한 외교’전략은 이미 오래전에 그 실효를 상실했었다. 말이 조용한 외교이지 한국 정부가 그동안 독도문제에 있어 조용히 한 게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조용한 외교가 아니라 ‘조용히 아무것도 안하는 외교’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주요 각국의 지도에는 여전히 독도가 일본영토로 표시돼 있다. 문제가 터지면 허둥지둥대다가 가라앉으면 더 이상 해결노력을 계속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충북 제천시의회 주관으로 17일 오후 제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일본 독도 침탈 야욕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일장기를 불태우고 있다. 연합


’조용한 외교’는 ’조용히 아무것도 안하는 외교’ 비난받아
한국의 대응카드로 ’독도독트린’은 적절했나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이름으로 발표한 독도대응책은 적절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르는 이미 독도 영유권 탈취를 위한 장기적인 시나리오를 세워두고 있는 일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힘들다. 시급한 과제는 현재의 독도 분쟁이 독도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한반도의 안보에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외교적 사안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외교는 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에 비해 약소국인 한국의 경우 힘은 일차적으로 국민적 대동단결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여야가 명실공히 초당적으로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론되는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같은 풀뿌리캠페인의 대대적인 확산도 일본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도문제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안보환경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절감케된다. 전세계적인 냉전체제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냉전체제가 온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고자 했던 자주외교의 패러다임도 미일의 군사적 동반전략과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이 충돌하는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한국의 안보전략에 있어 구체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체제는 구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위기이다. 중국의 안하무인격인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서 우리는 노 대통령의 자주외교가 거대한 벽에 부딪치고 있음을 목격한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지난 2년간의 자주외교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냉정하게 평가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자주 외교는 이상과 말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중국이 개방정책을 시작했을 때 실력자 덩샤오핑이 외교전략으로 제시했던 도광양회 (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 행동해 목적을 달성한다)로 이행해 북핵 6자회담의 주도 등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20년간에 걸쳐 실력을 기른 뒤 명실상부한 자주외교를 하는 중국의 외교전략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한겨레> 장정수 기자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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