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8 15:47
수정 : 2005.03.18 15:47
|
지난 15일 KBS '시사투나잇' 에서 방송된 누드패러디 장면을 캡쳐한 사진.
|
KBS 정연주사장, ‘박세일·전재희 누드패러디’ 한나라에 사과
<한국방송> 시사프로그램 ‘시사투나잇’이 지난 15일 헤딩라인뉴스 코너에서 방송한 박세일·전재희 한나라당 의원 ‘누드패러디’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이 한나라당에 정식사과하고, 해당 코너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정연주 사장은 18일 한국방송사를 항의방문한 김무성 사무총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국회의원 7명에게 “이번 사건이 개인적으로 KBS 사장으로 취임한 뒤 제일 화나는 일이었다. 당장 시사패러디 코너를 없애야겠다는 게 제 뜻이고, 벌써 그렇게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사장은 “이번 패러디 사건은 공중파 채널의 품위나 품격을 떨어뜨리고 부적절한 일”이라며 “공영방송으로서의 이미지에 먹칠하고 여성비하와 성적 모욕을 느끼게 했다. 공식적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이날 재발방지와 공론의 장 마련도 약속하면서, 해당 프로그램이 한나라당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이날 김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은 공영방송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도를 넘었다”며 “모든 약속을 했으니, 고발 여부에 대해선 차후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 “기초적인 패러디기법에 대한 몰이해”
이에 대해 시사투나잇에 ’시사패러디’ 프로그램을 제작·공급해온 <미디어몹> 최내현 편집장은 이날 오후 “‘누드 그림’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고, 일부 언론의 비판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최 편집장은 “플레이보이급 그림이라도 쓴 듯한 뉘앙스의 위 기사와 달리 문제의 그림은 마사치오가 그린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이라는 기독교 벽화였다”며 “문제의 ‘시사미술전’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밀레의 만종, 뭉크의 절규,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마사치오의 낙원추방, 고흐의 자화상 등 미술사에서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소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널리 알려지고 권위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인식되는 작품에 현실 속 인물의 얼굴을 합성해넣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패러디기법 중 하나다”며 “특히 행정수도 이전 때문에 의원직을 내던지고 단식까지 할 정도의 엄청난 상실감을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이라는 작품을 끌어와 빗댄 것은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 편집장은 “성당 벽화를 ‘아래와 가슴 부분만 가린 채 발가벗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누드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모든 맥락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꼬투리를 잡는 그들의 논리적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라고 비판했다.
|
▲ 미디어몹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내현 편집장의 반박글.
|
|
|
|
|
마사치오의 걸작 ‘낙원에서의 추방’에서 “성적 모독” 느낄 수 있나?
15세기 화가 마사치오 디 산 조반니(Masaccio di San Giovanni)의 명작 ‘낙원에서의 추방’은 성서 창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뱀으로 변한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은 채 쫓겨나는 그림이다. 에덴 동산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은 상태이지만,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가르미네 수도원 성당에 걸린 종교적 작품이었다. 이 그림에서 선정성과 성적 모독의 논란은 일찍이 미술사에서 제기된 바 없는 상태인데, 수세기가 지난 뒤 한국에서 패러디의 대상이 된 이 그림을 놓고 정치권에서 ‘성적 모독’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몹> 최 편집장은 “헤딩라인뉴스 ‘시사미술전’ 첫번째 꼭지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한덕수 신임 부총리, 노무현 대통령 등의 얼굴을 합성해 넣은 것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만이 패러디의 대상이었던 듯한 기사를 쓰고, 한나라당이 KBS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부풀리기를 하는 모습에 존경의 염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며 “편파적인 것은 헤딩라인 뉴스가 아니라 헤딩라인뉴스를 보도하는 보수언론들이다”고 비판했다. .
한편 한국방송 관계자는 “제작진은 정연주 사장의 생각과 다른 것 같다”고 말해, 제작진이 코너 폐지에 반발하고 있음을 전했다. 시사투나잇 제작진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제작진 회의에 들어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프로그램을 없애겠다는 정 사장의 발언에 대해 미디어몹 최내현 편집장은 “제작진은 프로그램 폐지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외부제작자로서 없애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패러디의 당사자가 반발한다고 프로그램을 없앤다는 것은 성급한 것 같다”고 밝혔다.
아래는 최 편집장의 “‘누드 그림’ 사태에 대한 입장” 전문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
 | |
<미디어몹> ‘누드그림’ 사태에 대한 입장 전문
난데없이 헤딩라인 뉴스가 화제만발이다. 헤딩라인 뉴스가 새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것이 과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나,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야 하는 일부의 처절한 노력이 눈물겹게 보여서 마음이 안스럽다.
글을 쓰고 있는 3월 18일 금요일 오전 현재, 조중동 웹사이트와 엠파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는 '성적 모독 패러디 논란'이니 '발가벗은 전재희-박세일'이니 하는 기사들이 걸려 있다. 아침에 있었던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에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김무성 사무총장의 발언이 나왔고, 한나라당이 KBS 정연주 사장을 항의방문하겠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바로 미디어몹 헤딩라인 뉴스 코너에 3월 16일자로 올라와 있는 '시사미술전' 편이다.
이미 방송 나가고 이틀이나 지나서 인터넷 독립신문이 뒷북성 기사를 썼고, 이것을 동아일보가 받아서 기사화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한나라 화단 박세일 화백의 '수도 상실'이란 작품을 보여 준다"면서 아래와 가슴 부분만 가린 채 발가벗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누드그림에 두 의원의 얼굴을 합성해 방송했다. (동아일보의 기사 중)
이 문제에 대한 미디어몹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1. 우선 실망하셨을 시청자 여러분들께 사과를...
아침에 이 뉴스를 접하고 좋은 누드 그림이나 한번 감상하러 미디어몹 헤딩라인뉴스 코너를 찾으신 네티즌 여러분들께는 우선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플레이보이급 그림이라도 쓴 듯한 뉘앙스의 위 기사와 달리 문제의 그림은 마사치오가 그린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이라는 기독교 벽화였다.
야한 누드 이미지는 미디어몹보다는 동아일보 메인화면 '스포츠동아' 박스에 많으니, 혹시라도 그런 걸 기대하셨던 분들은 그쪽으로 가 보시기를 권유한다.
2. '누드 그림'이라는 표현에 경의를...
문제의 '시사미술전'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밀레의 만종, 뭉크의 절규,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마사치오의 낙원추방, 고흐의 자화상 등 미술사에서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소재로 활용했다.
|
▲ 소위 '음란한 누드 그림'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
|
|
|
|
널리 알려지고 권위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인식되는 작품에 현실 속 인물의 얼굴을 합성해넣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패러디기법 중 하나다. 특정한 상황을 다른 컨텍스트에 배치해서 낯설게 보이게 하는 방법은, 늘 뉴스를 통해 너무나 익숙하고 그래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현상을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시사미술전'의 경우는 가장 대표적이고 권위 있는 미술작품들에 기대서 현재 정치 상황을 재구성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 때문에 의원직을 내던지고 단식까지 할 정도의 엄청난 상실감을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이라는 작품을 끌어와 빗댄 것은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즉 뜬금없이 어디서 포르노 사진을 가져다가 정치인 얼굴을 합성했다면 저질패러디라는 비난을 들을 소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당 벽화를 '아래와 가슴 부분만 가린 채 발가벗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누드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모든 맥락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꼬투리를 잡는 그들의 논리적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공영방송 KBS가 많은 사람들이 잠든 야밤을 틈타 야당 국회의원들의 초상권을 도용해 방송에서 패러디 명목으로 음란한 짓을 한 것은 너무도 상식이하고 경악할 일이다. KBS 시사 투나잇 프로의 이런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음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거의 병적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자주 있는 일로 공영성과는 전혀 무관한 퇴폐적 행태다. (18일 발표된 한나라당 성명서 중)
'낙원추방' 벽화는 피렌체 아르노 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카르미네 성당에 그려진 그림이다. '음란한 짓' '끈적끈적' '더러운' 등이라고 표현하는 그 사람들은 아마도 이 성당에 방문이라도 하면 들어가는 순간 코피를 쏟고 쓰러질 지도 모르겠다.
3. '박세일,전재희 성적 비하'라는 기사 제목에 존경을
헤딩라인뉴스 '시사미술전' 첫번째 꼭지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한덕수 신임 부총리, 노무현 대통령 등의 얼굴을 합성해 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한덕수 부총리의 얼굴을 '누드 그림'에 합성한 '부총리 창조'를 내보냈다. 특정 야당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비중으로 다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의원들만이 패러디의 대상이었던 듯한 기사를 쓰고, 한나라당이 KBS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부풀리기를 하는 모습에 존경의 염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편파적인 것은 헤딩라인 뉴스가 아니라 헤딩라인뉴스를 보도하는 보수언론들이다.
패러디를 당하는 당사자가 기분이 나쁜가 나쁘지 않은가는 패러디 논란의 핵심이 아니다. 패러디를 당하는 사람은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인들 자신의 얼굴이 원숭이에 합성되는 헤딩라인 뉴스를 보면서 기분이 좋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패러디의 사회적 의미와 메시지이고,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시청자 혹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가의 문제이다.
KBS 내부에서 헤딩라인뉴스 폐지를 검토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혈기왕성하고 성적 상상력 높은 분들을 위해서 헤딩라인 뉴스를 성인인증을 거친 유료 서비스로 전환할 것을 고려하려 한다.
문제의 헤딩라인뉴스를 제작하는 미디어몹 편집장 최내현
|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