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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가까이 통일지향 역사연구…‘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역저 강만길 위원장은 1970년대 중반부터 분단 극복을 위한 사론을 내놓는 등 통일 지향적 역사 연구로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냉전논리를 깬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년)은 당시 지식인들의 큰 공감을 샀으며, 좌익계열의 독립운동을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처음으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게 했다. 그의 호는 여사(黎史)다. 검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라는 뜻이다. 1933년 10월 경산남도 마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해 1971년부터 같은 대학 교수를 지냈다. 1980년 초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퇴직당해 약 4년 동안 강단에서 쫓겨나 있었지만, 그 시기에 ‘한국 근대사’와 ‘한국 현대사’ 등 한국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노작을 내놓는 등 고난의 시간을 학문적인 성숙의 시기로 승화시켰다. 1999년 고대 한국사학과 교수를 정년 퇴임한 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이사장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상지대 총장 등을 지냈다. 국민포장(1999년)과 단재상(〃), 한겨레 통일문화상(2000)을 수상했다.
“20세기 민족불행, 21세기엔 청산해야” 일본 후세들 침략사 모르면 다시 침략 가능성
중국도 대국주의로 가면 동아시아 평화롭지 못해
독도? 강경대응할 밖에 다른 대책 있을수없어
최근 한-일 관계를 비롯해 동아시아 정세가 복잡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어지러움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절실하다. 원로사학자인 강만길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만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뒤편 건물에 자리잡은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1시간 반 가량의 인터뷰를 관통하는 단어는 ‘평화’였다. 분단 극복을 위한 역사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강 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살이’를 간절하게 희망했다. 그의 그런 눈에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대국주의 지향이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로 비치는 것은 당연했다. 강 위원장은 일본에게는 역사를 후세들에게 바르게 가르칠 것을 요구했고, 중국은 대국주의를 추구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또 진보와 보수,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서로 인정하고 융합하는 우리 내부의 평화 추구도 역설했다.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의 방향은? =우리 역사에서 20세기는 전반기 동안에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고 후반기 동안에는 민족 대립을 한 불행한 시기였다. 21세기에는 그것을 청산해야 한다. 그래서 평화통일을 추진해야 하며, 20세기적인 식민주의와 냉전주의를 벗고 문화주의, 평화주의로 가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 광복 60주년을 맞아, 첫째는 과거청산 문제를 좀 더 철저히 하고, 둘째, 남북화해 사업을 벌이고, 셋째는 미래지향적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려고 한다. -독립운동사 대계를 쓰는 방안도 들어있던데? =해방후 분단으로 인해 독립운동사도 분단됐다. 36년간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했는데 반쪽만 서로 주장하고 있다. 완벽한 독립운동사를 쓰는 일은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가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교류가 활발한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한·중·일 간에 역사문제와 영토문제 등으로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동아시아의 20세기는 불행했는데 그 장본인은 일본이다. 그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생긴 문제였다. 21세기에는 동아시아가 이를 극복해야 하는데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나타나듯 아직도 20세기적인 냉전주의, 제국주의적 역사인식이 상당히 남아 있다. 일본은 20세기에 침략한 사실을 후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걸 모르면 그들이 다시 침략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 오점을 들추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꾸어가자는 것이다. -일본 일각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한일간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독도는 울릉도와 연결돼 있다. 17세기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울릉도가 우리 땅이라는 게 확정됐고,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이기 때문에 우리 영토다. 일본은 독도의 존재도 잘 모르고 있다가 러일전쟁때 전쟁 목적으로 독도를 자기 영토에 편입했다. 독도는 이런 역사적 실증에서도 우리 땅이다. 일본은 국내문제가 어려울 때나 우경화할 때 등 필요가 있을 때 늘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온다.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고 강경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20년 전부터 독도를 일반인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개방하기로 한 것은 대단히 적절한 방법이다. -중국도 최근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사 왜곡 등 패권주의로 흐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 =중국도 경제발전을 하면서 대국주의로 가는 듯한데 그래서는 안된다. 중국이 대국주의로 가면 동아시아가 평화롭지 못하게 된다. 21세기의 방향은 이미 서 있다. 유럽연합이나 아세안, 북미의 나프타 등 전세계 다른 지역은 모두 지역 공동체로 협력하면서 대립을 완화하고 있다. 그런 방향이 평화의 방향이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지역공동체가 아니고 민족끼리 대립하는 양상이다.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 방법은, 첫째, 중국은 대국주의, 패권주의로 가면 안되는 것이고, 둘째, 일본은 근대로 오면서 탈아시아를 채택했는데 이제는 다시 아시아 국가로 돌아와서 중국, 한국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는 평화롭게 통일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바탕이 돼서 동아시아도 유럽연합 못지않는 공동체로 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 이걸 위해서 특히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 -중국 일본 등 주변강국의 이러한 과거회귀적 움직임에 대해 결국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인정했던 중국이 지금와서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반세기 이상 분단된 한반도가 내부에서 통일될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어떻게 통일되느냐가 주변국에는 상당한 불안 요인이다. 일본은 한반도가 중국 러시아에 가깝게 되는 통일을 두려워 한다. 중국은 반대로 통일이 미·일에 가깝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중국은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에 우리 동포 200만명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보고, 미리 하나의 방파제를 쳐놓자는 의미에서 고구려사를 들고 나온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는 미·일에 가깝게도 또 중국에 가깝게 통일되기도 어렵다. 대단히 지혜로운 조처가 필요하다. 21세기는 미·일에도 중·러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당장의 현안인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반도가 어느 쪽이든 핵을 가지고 있는 한 평화통일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주변국이 두려워하는 데 핵을 가지게 되면 방해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문제는 지금 작은 나라가 체제보장을 위해 핵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체제보장을 해주는 것과 핵을 포기하는 것을 연결해서 해결해야 된다. -한승조 교수가 일제 식민지를 지낸 게 다행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는데? =한마디로 말이 안된다. 일본이 지배의 목적으로 깐 철도가 발전을 가져왔다고 잘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말이 되나. 비록 효과가 적더라도 제 민족이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하는 것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러시아에 병탄된 것보다 나았다고 하는데 러시아는 한반도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립지대에 두려고 했지 합병을 추진하지 않았다. 당시 이를 안 일본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한반도 중립화안을 수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전혀 사실도 모르면서 형편없이 그따위 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꼭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우리는 지금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보수와 진보가 서로 차이를 내세우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차이를 내세워 대립해서는 안되고 각 집단과 세력이 융합해야 한다. 우리가 해방 후에 왜 분단됐는지 돌이켜보자.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남쪽은 미군이 점령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통일된 민족국가를 만들려면 좌익과 우익이 연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우익과 좌익은 한반도를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해서 분단이 됐다. 분단이 민족적으로 얼마나 어려움을 줬는지는 다 안다. 좌는 우를 인정해야 하고 우는 좌를 인정해서 하나의 나라와 정권, 민족으로 공존해야 통일국가가 될 수 있다. 서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통일할 수 있는 길은 전쟁인데 그것이 안되는 것은 한국전쟁이 이미 증명했다. 글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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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뒤안길
한승조·심재철 발언에
“말같지도 않은 얘기” 강만길 위원장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강권해서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맡았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정말 만사 다 제치고 한 두 해 동안 푹 쉬겠다”고 말했다. 50년 가까이 책을 붙잡고 야만의 시대와 씨름해 온 노학자의 바램치고는 퍽이나 소박했다. 그는 평생 아껴왔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희귀한 근현대사 원자료와 장서 8500여권을 지난해 7월 북한 사회과학원에 보냈다. 그 전해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사회과학원에서 일하는 북한 젊은 학자가 제대로 된 조선총독부 관보 한 질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것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관보 한 질을 꾸리다가 다른 자료도 모두 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자료는 공부하는 사람이 갖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또 남쪽에서는 도서관에 가면 다 구할 수 있는 데다가 젊은 학자에게 주는 게 효과적이겠다 싶어서 정부에서 안된다고 하는 국방부 자료 등 몇 가지를 빼고는 몽땅 보냈죠.” 개인이 북한에 서적을 기증하기는 처음이었다. 그해 9월 금강산에서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열렸을 때 허종호 위원장 등 북한 학자 60여명이 기립해서 고맙다고 큰 인사를 했단다. 그 얘기를 하면서 노학자의 얼굴에는 흐믓한 미소가 흘렀다. 인터뷰 도중 한승조 교수의 친일 발언이 화제가 됐을 때는 조목조목 반박하면서도 “말같지도 않은 얘기를 언론에서 너무 크게 취급해 그 사람의 공론화 의도만 만족시켜준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군 출신이 정권을 잡아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최근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독립군 활동을 했던 사람이 정권을 잡아서 과거 청산을 잘했다는 북한은 지금 어떤 모습이냐”고 공격한 데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얘기에 대해 젊은 사람과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며 직접적인 대응을 삼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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