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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3 16:44 수정 : 2005.03.23 16:44

민경국 강원대 교수.

[분석] 민경국교수 “시장자유위해 민주주의 제한해야” 주장…당혹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이 보수 우익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1항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훼손하기 때문에,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은 좌파적 악성 바이러스를 내포하고 있다. (국가의 시장개입) 허용범위가 중국 헌법이나 과거 소련 헌법만큼 광범위하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가 지난 21일 ‘자유지식인 선언’이라는 모임의 월례포럼에서 내세웠다는 이 주장은 헌법지식에 밝지 않은 이들을 당혹감에 빠뜨린다.


▶ ‘좌파 바이러스 내포한 헌법 고쳐야’ 원문보기

우리의 헌법이 중국 헌법이나 옛 소련 헌법만큼 좌파적이라면 한국의 국가이념이 공산주의에 가까웠단 말인가.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의 이름으로 내린 추상같은 결정들은 또 뭔가. 유사 공산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행위였을까. 틈날 때마다 ‘헌법정신’을 강조하며 개혁정책에 ‘색깔’을 덧씌어온 이들의 헌법정신도 색원은 붉은색일까.

민 교수는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장경제와 좀처럼 부합되지 않는다”며 “자유를 수호하지 못한 삼권분립제도는 실패했다”고 ‘선고’했다. 또 “기든스, 하버마스 등의 민주주의론은 플라톤, 헤겔,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엉터리 국가관에서 비롯된 민주정치관으로 폐기처분 대상”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이런 주장은 ‘민주주의=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 국정교과서의 낡은 도식을 부정하지만, 더불어 부정되는 건 ‘시장경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이고 ‘삼권분립’이다.

▲ 지난 21일 서울 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월례포럼 ‘이 시대, 왜 자유시장인가?’ 왼쪽에서 세 번째 앉은 이가 민경국 교수.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은 중국이나 소련 헌법만큼 좌파적”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은 제9장 119조에서 127조까지에 해당한다.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며 자유시장경제를 분명히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민 교수는 119조 2항부터 곧바로 1항의 전제를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와 자원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120조는 사적 소유를 제한하는 사회주의적인 것이다. 122조도 거의 같은 조항이다. 123조의 농·어업 보호육성, 지역경제 육성, 중소기업 보호 육성, 농수산물 수급균형과 유통구조 개선 등 국가의 의무와 관련된 조항은 국가의 시장개입을 강제하고 있다. 127조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 의무도 마찬가지다. 경제관련 조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권과 관련한 35조 1, 2항도 환경의 사적 주인을 찾아주지 않고 국가가 주인행세를 하려는 것이며, 3항 주택개발정책도 사회주의적인 것이다.”

민 교수는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은 자유시장경제를 부인하고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조항들로 가득차 있다”며 ‘좌파적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다’는 조항들을 열거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기사 아래 상자 참조)

민 교수는 그동안 자신의 학문과 논리가 일관성을 고수해왔다고 자평했다. 1993년 헌법 문제를 다룬 <헌법경제론>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는 그는 “그 때 기조나 지금 기조는 같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초대 ‘하이에크학회’ 회장을 맡았던 학자로서 “나의 이론과 하이에크 이론은 똑같다”고 학문적 계통을 설명하기도 했다. 자신의 주장이 매우 돌출적으로 들린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듣는 사람이 과문한 탓이라는 얘기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인 하이에크의 경제학 요지는 ‘어떤 정부개입보다 시장에서 위험을 스스로 지는 사람이 만들어낸 질서가 낫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헌법학자들 “학자들끼리 학교 안에서나 할 얘기”

그러나 헌법지식에 밝은 헌법학자들도 민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생소’하다거나 ‘부적절’하고 ‘과장’돼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민 교수가 90년대에 쓴 책을 읽었을 때는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주장은 정말 생소하다”며 “민주주의 통치구조의 근본이 되는 플라톤의 철학까지 부정하는 주장을 어떻게 저토록 과감하게 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헌법학자로서 통상적인 좌파 수준의 조항은 우리 헌법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 헌법 경제 조항의 기본취지는 자유시장경제에 입각해 개인의 창의성과 시장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국가개입은 시장에서 유효한 경쟁 기능이 상실됐을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 시장경제를 보장하기 위한 백업시스템”이라고 반박했다. 또, “헌법 개정을 얘기하려면 실정헌법 틀 안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지 끝까지 토론한 뒤 해야지 인상평 수준으로는 곤란하다”며 “그의 주장은 대학 안에서 학자들끼리 따져보는 거라면 몰라도 담론의 장에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권오승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시장경제 자체를 규제하기 위한 규제조항이 있을 수 있고 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정하기 위한 규제조항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 헌법 어디에 시장경제 자체를 규제하는 조항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시장경제를 취하는 나라 가운데 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정하는 규제조항을 두지 않은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헌법에 원리와 규범이 잘 다듬어지지 않았거나 시대적으로 맞지 않은 조항이 남아있는 문제가 있어서 수정하고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면서도 “이들 규제조항의 적절성 여부를 논할 수는 있어도 좌파적인지 우파적인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그런 헌법 둔 나라 없는 건 사실…박정희 헌법이 가장 좋았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헌법으로 제한해서 시장경제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민경국 교수의 논리는 “국가예산 규모를 제한하거나 의회의 무제한적 입법권을 제한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좀더 구체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예산 규모를 제한하고 의회 입법권을 제한하는 헌법조항을 둔 나라가 있을까.

“그런 헌법을 둔 나라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헌법의 실패라는 거다. 헌법의 실패는 있어도 시장의 실패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헌법은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무제한적인 민주주의와 다수가 원하면 무조건 법으로 정하는 의회의 입법권을 헌법으로 제한하기 위해서다.”

민 교수는 “미국정부의 예산기조는 균형예산이었는데 20세기 들어 루즈벨트 대통령 같은 케인즈주의자들 때문에 그 기조가 깨져서 경제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며 19세기 미국을 자신의 이상적 상으로 꼽았다. 또,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이 가장 좋았다. 그 때도 국가의 경제개입 조항이 없진 않았지만 119조 2항 같은 조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상이 가장 가깝게 구현된 때는 국내든 국외든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찍혀 있었다.

그러나 민 교수의 헌법 개정 주장은 과거시제가 아니라 현재시제다. ‘자유지식인 선언’이 우파 진영 안에서 새로운 운동방향에 대한 나름의 모색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만큼, 성공 가능성을 떠나, 민 교수의 주장도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민 교수와 연대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헌법의 현실화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과 세력은 누가 있을까. 민 교수는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이 헌법에 대해 깊이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좌파 바이러스를 내포하고 있다”는 민 교수와 “성매매특별법은 좌파적 생각”이라고 보는 좌 원장의 만남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헌법수호’하자는 헌변도 “때되면 조항 뜯어고쳐야”

‘대한민국 헌법정신 수호’를 활동의 주요목표로 삼는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과 대한민국 헌법의 좌파성을 폭로하는 민경국 교수의 관계설정은 기묘하다. 양쪽은 평화롭게 공존하기 어려울 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민 교수는 헌변의 명예회원이며, ‘자유지식인 선언’의 공동대표인 김상철 변호사는 헌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좌파적 헌법을 수호할 것인가 뜯어고칠 것인가. 연대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어느 한쪽이 활동목표 또는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승환 헌변 총무 변호사는 “민 교수와 교감은 없었다. 하지만 헌변이 헌변이지만 현재 헌법을 문자 그대로 수호하자는 태도는 아니다”고 답했다. 이 변호사는 “헌변 회원 가운데는 헌법 경제조항을 완전한 자유주의 이념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시급한 개정을 얘기하기보다는 적당한 기회가 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는 편이었다”며 “정치권에서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논의한다면 차제에 경제조항도 고치자는 얘기가 헌변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들의 꿈대로,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과감히 제한하는 헌법이 역사상 최초로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 그 때는 대한민국을 몇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아예 ‘공화국’이라는 ‘정체’의 문패를 떼어내야 할까. 어쨌든 국정 교과서의 내용은 그 때 가서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해당기사 관련 헌법조항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④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⑥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32조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②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③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④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⑤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제33조 ①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③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35조 ①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③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9장 경제

제119조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제120조 ①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수산자원·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채취·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할 수 있다.
②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

제121조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제123조 ①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⑤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

제124조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

제125조 국가는 대외무역을 육성하며, 이를 규제·조정할 수 있다.

제126조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

제127조 ①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
③대통령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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