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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국회 법제사법위가 연 김종빈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검찰총장이라는 자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최근 잇따른 고위공직자들의 낙마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인사청문회 확대’가 비중있게 검토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결과는 낙제점에 가깝다. 그 내용이나 형식이 모두 부실해, 청문위원으로 나섰던 의원들조차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말할 정도다. ■ 부실한 ‘소프트웨어’
청문회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미리 준비를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핵심을 짚지 못했다. 하나마나한 질문도 많았다. 이러다 보니 김종빈 후보자도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기 보다는, 여야 양쪽에 책을 잡히지 않도록 두루뭉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① 과거 행적·경력에 대한 심층적 검증이 이뤄졌나?=김 후보자는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치며 공적자금 비리, 대통령 아들 비리,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이들 사건들은 부실수사 논란과 함께 특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지만, 이 대목은 의원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이 대선자금 수사를 거론했으나, “송광수 총장이 비교적 잘했다고 평가받는데, 대검차장으로서 보좌를 충실히 했느냐”고 묻는 데 그쳤다. 공적자금 비리 수사를 물은 같은 당의 주성영 의원은 이 사건으로 구속됐던 박주선 전 의원의 억울함을 거론하는 데 집중해 핵심을 벗어났다. ② 질문 수준이 시중 소문을 넘어섰나?=청문제도가 활성화한 미국의 경우, 청문위원들은 국세청이나 연방수사국(FBI) 등 정부기관의 사전 조사내용을 철저히 분석한 뒤 청문회에 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는 미리 제출된 답변서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이 유일하게 나름의 사전조사를 거쳐 김 후보자의 재산문제와 자녀의 세금탈루 의혹을 제기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 의원은 김 후보자의 지난해 대출 상환금의 출처를 캐묻는 과정에서 자녀의 소득세 누락 의혹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나중에 김 후보자의 자녀가 소속 회사를 통해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간단히 해명이 됐다. ③ 전문가를 얼마나 활용했으며, 현장조사는 이뤄졌나?=주요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 분야 전문가들의 협조를 얼마나 끌어내느냐가 밀도있는 검증의 성패를 좌우한다. 검찰총장 후보자라면 청문위원들이 법학 교수나 변호사 등으로부터 자료와 의견을 얻고, 후보자 주변 인물들에 대한 현장조사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선 이런 노력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 법사위원은 “국정조사 때처럼 검찰청에 가서 사람도 만나고 기록도 봐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김 후보자의 재산문제와 관련해서도 의혹이 가는 대목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④ 여야를 넘어선 질의가 이뤄졌나?=여당은 후보자를 두둔하는 데 급급하고, 야당은 검증보다 정쟁에 몰두하는 고질적인 폐해가 이번에도 그대로 되풀이됐다. 우윤근 열린우리당 의원은 김 후보자의 재산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어떠냐”거나 “양심에 부끄러운 게 없는 걸로 믿겠다”며 노골적으로 후보자를 감쌌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공직부패수사처나 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소속 당의 입맛에 맞는 답변을 끌어내기에 급급했고, 야당은 반대로 정부 방침과 배치되는 답을 끌어내는데 몰두했다. ⑤ 인격 모독적 발언이나 근거없는 폭로는 없었나?=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질문 도중 역대 검찰총장들에 대해 인격 모독 수준의 평가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그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인사청문회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만 하다. 주 의원은 또 별 근거를 대지 않고 언론보도를 인용하면서 “여당 인사들이 (압력행사를 위해) 김 후보자를 만나지 않았나”라고 묻기도 했다. ■ ‘하드웨어’의 문제도 많다
재상형성 등 자료 접근 쉽게해야
내정 한참지나 청문위 구성
자료 늦게 내 검토시간 쫓겨
청문위원들도 할 말이 많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시간 부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번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요구자료는 법적으로 청문위원회가 구성된 지난 24일에야 취합돼 법무부에 넘겨졌다. 청문회 실시 6일 전이다. 답변자료는 청문회 당일이나 하루 전날 제출됐다. 법무부가 청문회 3일전까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자료를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추가로 자료제출을 요구할 겨를도 없었던 셈이다. 그나마 이번 인사청문회는 법제사법위가 담당 상임위로 미리 내정돼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19개 자리에 대한 청문특위는 따로 구성돼야 하지만, 대부분 청문회를 코앞에 두고 만들어지는 바람에 심도있는 준비가 어렵다. 자료접근의 한계도 문제로 꼽힌다. 국회 차원에서는 청와대 등 관련기관의 사전 검증자료를 볼 길이 없는데다, 재산 관련 의혹을 규명할 수단도 전혀 없다.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은 “금융자산 자료나 본인이 아닌 가족 등에 대한 자료 확보가 불가능해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관련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문회가 단 하루, 그것도 5∼6시간만에 끝나는 것도 청문회를 ‘요식행위’로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심도 있는 정책청문회가 되려면 질문을 신상과 정책으로 나눠 최소한 이틀 이상은 실시해야 한다”며 “방송중계에 맞춰 질의시간을 7분으로 제한하니 뭘 따져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광섭 이지은 류이근 기자 iguass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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