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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3 19:58 수정 : 2005.04.03 19:58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3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북한 방문을 꿈꿨다. 그는 평소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자신의 방북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방북을 권유했던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3월 교황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한반도 평화에 대단히 기여할 뿐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교황은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의 기적일 것이라며, “곤경에 빠진 북한 주민을 도우려는 김 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같은해 6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교황의 방북을 주선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교황이 자신의 방북 권유에 고개를 젓지 않았다며, “김 위원장이 교황을 초청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교황의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그렇다면 오시라고 하라”고 수락했다.

▲ 84년 방한 당시 교황 바오로 2세의 모습. (서울=연합뉴스) - 2005/04/03 14:40

이때부터 교황의 방북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평양교구장을 겸하는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은 “교황의 방북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기를 기원하는 편지를 교황청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청의 태도는 신중했다. 교황청은 북한이 가톨릭 교회를 인정하고, 신부를 다시 받아들일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교황청은 1998년 교황의 쿠바 방문 때도 이런 조건을 달았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에 97년 50명의 외국인 수녀와 신부의 입국을 허용하는 종교자유화 조처를 취했다.

교황청이 내건 조건에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결국 교황 방북은 흐지부지됐다. 생전에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과 이념대립의 현장을 방문한 교황이었지만, 북한은 이라크, 중국과 함께 마지막까지 그의 입맞춤을 받지 않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80년대 광주 망월동 참배
40여 차례 한국어 공부 자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 역사상 최초로 한국을 2번이나 방문하는 등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한국에 천주교가 전해진 지 200년 만인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당시 방한사에서 “벗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귀절을 한국어로 말해 한국인들을 놀래켰다.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식을 주례해 과거 천주교를 전파하다 순교한 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신학생 등 103명을 성인으로 시성했다. 뿐만 아니라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고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소를 참배하는 등 한국사의 아픈 곳을 어루만졌다.

두번째 방한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때 이뤄졌다. 이때 바오로 2세는 65만명이 참석한 장엄미사를 직접 집전하며 한국의 분단상황을 크게 걱정하며 민족의 화해를 기원했다. 최근까지도 시간 나는 대로 한국의 민족 화해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는 데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장익(춘천교구장) 천주교 주교회 총무는 3일 기자회견에서 “교황께서 1984년 한국 방문에 앞서 우리말을 배우시겠다고 해서 40여차례나 한국어 공부를 시켜드렸다”며 “일정이 워낙 바쁘셨는데도 나를 5분 이상 기다리게 한 적이 없고 놀랄 정도로 진지하게 공부에 임하셨다”고 전했다. 장 주교는 또 “교황께서 ‘한국에서 모든 말을 한국말로 해야겠다’고 말씀하셔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중간에 하다 못하더라도 하는 데까진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 어떻게 한국에 가서 다른 나라 말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하셨다”고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교황이 이처럼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것은 자신의 모국인 폴란드가 나치 침략 시절을 겪어 일제 압제를 겪은 한국의 고통에 대해 크게 공감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김아리 기자, 연합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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