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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사격훈련으로 해군·경 함정 남쪽 대피
고속정 20분 늑장출동…북, 이례적 신속보도 술 취한 어부가 몰았던 ‘황만호’(3.96t)의 대낮 월북 과정에서 군 경계태세의 허점을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겹쳐 일어난 것으로 군 당국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14일 해당 육·해군 부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3일 황만호의 월북 당시 동해안 어로한계선 부근 해상에는 해군과 해경 함정이 한 척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은 이런 ‘우연’이 이날 낮에 있었던 대공사격 훈련 때문이라고 밝혔다. 육군 22사단은 이날 낮 12시20분께 해경 쪽에 오후 1시부터 대공사격 훈련이 예정돼 있으므로 사격권에서 함정을 대피하도록 요청했으며, 어로한계선 인근에 있던 해경 경비함 2척은 북방한계선(NLL) 이남 8마일 해상으로 남하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황만호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북상할 수 있었다. ‘공교로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육군은 대공사격 훈련을 하던 중 황만호가 사격권에 들어와 북상하자, 사격을 멈추고 한동안 북상하는 선박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사격장에 민간 어선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번에도 안전관리 측면에서 사격을 중지했다”고 말했다. 육군 쪽은 황만호가 북상을 계속해 어로한계선을 넘어가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신호탄과 기관총 등을 난사했다. ‘우연’은 또 이어졌다. 이날 오후 3시30분께 레이더에서 북상하는 선박을 포착했던 육군은 얼마 뒤 레이더에서 이 선박이 사라지자 남쪽으로 복귀한 것으로 착각하고, ‘비상’을 한때 해제하는 등 우왕좌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은 3시50분께에야 해군과 해경 쪽에 어선 제지에 협조해 달라는 긴급 연락을 보냈다. 연락을 받은 해군 고속정이 5분 뒤인 3시55분께 거진항에서 긴급 출항했으나, 이 시각 월북 선박은 북방한계선을 유유히 통과하고 있었다. 산술적으로 처음 ‘황만호’를 발견했던 시각인 오후 3시30분께 고속정이 출동했다면 군사분계선에 이르는 15㎞ 안에 추격할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황만호는 당시 10노트(18㎞) 정도의 속도였으며, 고속정은 33노트(60㎞)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모로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 법’이라는 옛말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지난해 10월 중부전선에서 일어난 철책 절단 월북사건에 이어, 군 경계·작전태세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한편, 북한은 이날 낮 12시 황만호의 월북 사실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하고, 현재 해당 기관에서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남조선의 황홍연 동포가 13일 오후 4시30분께 선박을 타고 남조선군의 총포탄 사격을 받으면서 조선 동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공화국 북반부로 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이날 정오 뉴스 시간에 중앙통신 보도 내용을 다뤘다. 김성걸 기자 s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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