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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 지난해 11월 파악…검찰 나서자 민정수석실 통보
청와대가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참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도 안이하게 대처해, 사건의 파장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박남춘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현 인사제도비서관)과 김만수 대변인은 2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는 지난해 11월9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업체 인수계획 무산 위기’라는 제목의 정보보고서를 받았다. 박 전 실장은 국정상황실의 서아무개 행정관에게 사태파악을 지시했고, 서 행정관은 9일부터 11일 사이에 석유공사와 에스케이 등에게 물어본 뒤 “철도청이 무리하게 결정한 것이니, 사업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로 일일현안점검회의 자료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정상황실은 막상 회의가 열리는 15일 아침 왕영용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으로부터 “오늘중에 계약이 해약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회의 안건에서 이 문제를 제외했다. 국정상황실은 대신 산업정책비서관실에 이메일로 자료를 넘기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매듭지었고, 산업정책비서관실도 보고 등 추가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청와대 안에서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내용을 알고 있던 사람은 국정상황실의 실장, 행정관과 산업정책비서관실의 행정관 등 세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 뒤 계약금 반환 문제나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연루설 등으로 사건이 점점 커져가는데도, 청와대쪽의 대응 움직임이 미미했던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본격 보도된 3월27일 이후 청와대의 움직임도 이해하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은 3월28일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사안을 파악하라”고 지시했으며, 30일 일부 언론은 이광재 의원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서 행정관은 31일 신임 천호선 국정상황실장에게 “우리가 지난해 11월에 사실을 파악했던 적이 있다”고 뒤늦게 보고했다고 청와대쪽은 설명했다. 하지만 천 실장은 이런 보고를 받은 뒤에도 사건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름여 뒤인 지난 4월18일 검찰에서 서 행정관에게 확인 전화를 걸어 국정상황실이 지난해 11월 조사에 나선 배경을 묻자, 천 실장은 그때서야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민정수석실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쪽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청와대가 사건의 실체를 미리 파악하고도 덮으려 했다’는 야당쪽의 공격에 대한 해명을 시도했지만, 청와대 스스로 개입 의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부서간 장벽 등 청와대의 관리능력 부재도 이번 사건으로 다시 드러났다.
이런 어설픈 대응은 청와대 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눈에 띈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국정원 문건을 보면, 11월9일 정보보고서 배포처에는 청와대 외에 경제부총리, 산자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도 포함돼있다. 이들 장관들이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뒤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흔적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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