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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남영동 미 대사관 공보문화원 2층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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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 차관보 단독 인터뷰
지난 29일 오후 늦은 시각 서울 남영동 미 대사관 공보문화원 2층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늘 같은 질문에 시달린 데다 일주일에 걸친 한·중·일 순방의 마지막날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솔직하고 분명한 어조로 북한에 대해 할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직업외교관을 선택한 것은 타협과 협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강조 했다. 그의 말은 미국이 보인 가장 적극적인 협상의지로 평가할 만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는데, 이번 순방에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인가? =이번 순방에 큰 비중을 둔 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이번 방문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시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개월 동안 북한은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채 핵무기를 개발했음을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이 그런 시각을 바꿀 이유는 없다고 본다. -중국은 북한이 회담복귀를 미루는 데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 =중국에 물어보면 대답을 잘해주겠지만, 내 인상으론 중국이 기분이 좋은 것 같지 않다. 6자 회담 주최국인 중국의 초청을 북한이 거절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회담 복귀 거부는 중국 외교, 북-중 관계에서도 좋은 징조는 아니다.
-언론들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을 6자 회담 복귀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연계시켜서 보고 있지 않은가? =역시 중국에 물어볼 얘기다. 내 개인의견으로는 6자 회담과 관련해 눈에 띌만한 진전이 없는데도, 후 주석이 이른 시일 안에 북한을 방문한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언론들은 차관보의 중국 방문을 특별히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들이 논의됐는가? =북한 주요 인사들이 중국을 방문했고, 그 논의 결과에 대해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번 논의에서 큰 진전이 있어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것이라는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의 태도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중국에) 간 것이다. -결과는 전체적으로 다소 비관적인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조짐은 없는지? =과거에도 그랬기에 북한이 어느날 갑자기 회담에 나오겠다는 (선언을 할)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희망사항만으로 일을 추진할 수는 없다. 긍정적인 면은 6자 회담이 참가국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핵 해결 이후 이 지역이 하나로 통합되고,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체로 발전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북 돌연 회담복귀도 배제안해
참가국들 가까워진 것도 성과
-차관보의 이번 방문 중에 한-미 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됐다. 북한이 이를 지켜본 다음에 회담 복귀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는데. =그러지 않길 바란다. 북한은 최근 모든 문제에 대해 ‘두고 보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오지 않았나. 북한이 협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지난 3월31일 북한 외무성이 6자 회담을 군축회담으로 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는데.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포함한 6자 회담 참여국들 사이에 회담의 목적에 대한 합의를 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이 회담의 전체 성격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북한이 얼마나 고립되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북한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는 것이 모든 나라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했는데. 북한이 결단을 내리도록 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 아닌가? =다른 의견이나 제안이 있다면 언제든 들을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협상을 하겠다는 점과 이 지역의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한다는 전략적인 결단을 내렸다. 북한의 필요와 요구, 우려사항들을 다룰 수 있는 협상테이블을 제시했다. 만약 북한이 회담 테이블로 복귀하고, 기존의 제안에 반응을 보이고, 자신들의 제안을 내놓는다면 대화를 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나는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직업이 아닌 외교관이 된 것이다. -미국은 6자 회담 틀안에서 양자협의가 가능하다면서 왜 꼭 회담장 안에서만 (양자협의를) 해야한다고 고집하는가?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해 그 틀 안에서 비공식적인, 양자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하고 싶다거나 본 회담 사이사이에 협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면, 그런 제안들은 수용한다는 자세다. 미국과 충분한 대화채널이 없다고 느끼는 것, 또 6자 회담의 틀 안에선 충분한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이 북한이 갖고 있는 우려이고 미국과의 더 많은 양자적인 접촉을 원한다면, 회담에 나와 그런 의사를 밝히면 된다. 그런 우려사항들은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난 ‘주고받기’ 좋아하는 외교관
아직은 6자 포기단계 아니다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다면 회담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사전에 북-미 접촉이 가능한가? =그런 제안은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은 북한이 6자 회담을 북미간 대화로 바꿔 다른 관련국들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전제로, 이를테면 뉴욕 같은 장소에서 사전접촉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 =만약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6자 회담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면, 이를 우리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6자 회담 틀 안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6자 회담은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 폭넓은 틀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의 6자 회담 복귀에서 주요 걸림돌은 이른바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이다. 미국의 최우선 정책목표가 민주주의 확산인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인지에 대해 북한이 우려하고 있는 것 같은데. =6자 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회담이지만, 궁극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발언을 할 것이다. 하지만 회담의 기본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다.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표현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대단히 긴 상원 청문회 증언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서 나온 표현이다. 증언 전반에 걸쳐 북핵 협상을 외교적으로 풀어나가려는 미국의 의지를 명백히 제시했음에도, 불과 세 단어(폭정의 전초기지)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회담에 대한 북한의 진지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폭정의 전초기지’나 부시 대통령의 비난발언은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게 한국민의 대체적인 견해다. =김정일 위원장을 부드럽게 대하고 감싸줌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전례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본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보다 정직할 필요가 있으며,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냉엄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북한이 매우 반민주적 국가이자 권위주의적 정권이며, 매우 고립된 국가라는 점이다. -그 발언의 이면에 미국이 북한을 협상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있다고 보기 때문 아닌가? =미국은 과거에도 ‘폭군’들과 협상한 전례가 있다. 북한과 협상할 용의가 있으며, 이미 그런 입장을 밝혔다. 개인적으론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같이 매우 다루기 힘든 상대와도 협상한 경험이 있다. 그 또한 폭군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북핵 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가 북한의 핵실험 강행의 명분이 될 우려는 없는가? =유엔 안보리의 임무로 본다면 북핵 문제야말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안보리 회부 논의를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조처로 보는 것은, 솔직히 조금 낯설다. 물론 우리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6자 회담은 현재 진행 중이다. 6자 회담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따라서 라이스 국무장관은 우리가 이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할 권한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대담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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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속내가 뭔지…”답답한 심경 토로 지난 29일 오후 내외신 기자회견 직후 <한겨레>와 단독으로 만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거침없는 말투로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북한 지도부처럼 특이한 사람들은 처음”이라며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묻자, 자신도 발언 당사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처럼 북한이 ‘고립된 반민주적 국가’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며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대사관 직원한테 종이쪽지를 건네받아, 미리 찾아둔 ‘폭정’의 사전적 의미를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말’보다는 ‘협상’에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를 더 중시해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이번 인터뷰의 핵심적인 메시지라는 판단에,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전제로, 본 회담 장소가 아닌 곳에서도 북-미 양자협의가 가능한가’를 재차 확인하자,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게 바로 내가 한 말 아닌가요?” 미 대사관쪽은 인터뷰 뒤에도 이 문제를 거듭 확인했다. 북미 양자협의의 조건은 ‘6자 회담 복귀’를 전제로, ‘6자 회담의 틀 안’에서라는 것이다. 정인환 기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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