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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0 18:45 수정 : 2005.05.10 18:45

병역을 마쳐야만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 개정 국적법 시행을 앞둔 10일 오후,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국적업무출장소에서 시민들이 국적이탈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장] 서울 목동 국적업무출장소 가보니

10일 낮 서울 목동의 법무부 산하 국적업무출장소. ‘대기인 수 120명’ 등이 적힌 번호표를 뽑아든 민원인들이 사무실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현관 앞 마당까지 늘어서 있다.

갓 돌을 넘겼을 법한 남자 아이, 모자를 눌러쓴 중학생,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 등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모여 있다. 손자의 ‘국적이탈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 손에 들고, 접수 순서를 기다리는 60∼70대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국적 포기전 병역의무 지도록 법 개정되자

`원정출산 군대 기피족' 이탈신고 줄행렬

원정출산 등으로 외국 시민권을 얻은 사람은 병역의무를 마쳐야만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 국적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이곳에선 휴일을 빼고 매일같이 이런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만 18살 이전에 국적포기 신고를 하면 병역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는 현행법의 끝자락을 붙들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개정안 통과뒤 폭증

이곳을 찾은 이들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유’에 대해 대부분 “자녀의 외국유학을 위해서 미리 하는 것일 뿐”이라거나, “우리 아이는 원정출산과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모르겠다”며 아예 고개를 돌렸다.

미국 국적을 함께 지닌 10살짜리 아들의 한국 국적 포기를 신고하러 왔다는 한 30대 여성은 “갑자기 법이 바뀐다기에 부랴부랴 나왔다”며 “아들의 외국유학도 문제지만, 사실은 병역 문제가 제일 큰 이유”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온 한 남학생(17·고1)은 ‘한국인’임을 포기하게 된 것에 대해, “부모님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날 국적포기 신고 건수는 무려 143건이나 됐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하루 1∼2건에 그치던 국적포기 신고 건수는 법안 통과일인 4일 35건으로 늘어나더니, 6일 97건, 7일 47건, 9일 64건 등으로 폭증하고 있다.

국적포기 신고는 서울말고도 부산, 광주, 대전 등 7개 지역의 출입국사무소와 재외공관에서도 받고 있어, 실제 건수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국적포기 신고 건수는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지난해 11월16일 이후에도 한때 급증한 바 있다. 최근의 신고건수 급증도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예정된 법률 시행을 앞두고, 이미 예상됐던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남자 많고 한살짜리도

서울 목동 국적업무출장소 관계자는 “신고인들은 주로 13∼17살(1988∼92년생) 남자가 많고, 한살짜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들의 직업은 상사의 해외주재원이나 교수, 연구원 등이 많다”며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아예 ‘개인사업’이나 ‘자영업’, 또는 직업란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법무과의 이철희 검사는 “국적포기는 순수한 신고제이므로 신고하는 순간 사실상 국적을 잃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나중에 국적 재취득을 신청할 수 있지만, 병역 면탈을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했던 것으로 판명나면 재취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살 경우, 주한 외국인처럼 취학이나 취업 등에서 일부 불편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겐 ‘병역 면제’가 더 큰 ‘이득’인 셈이다.

국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사회 지도층이 병역 기피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 법의 취지가 병역 회피를 막는 것인만큼 법무부는 지금 이뤄지고 있는 국적포기 신고를 무조건 수용해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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